일본사학회장을 맡고 있는 박훈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는 최근 일본사를 연구하는 젊은 학자들이 급감했다며 우려했다. 10년 전만 해도 1년에 5명 이상씩 국내외에서 일본사 박사학위 취득자가 나왔는데 요즘에는 1, 2명에 불과하다는 것. 동일본 대지진과 팬데믹에 따른 여파도 있지만 최근 한일 관계 악화가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지난해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이 발표한 ‘정체기에서 쇠퇴기로 접어든 일본 연구’ 논문에 따르면 일본 관련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자 1633명(2019년 기준) 중 50대 비중이 75%에 달한다. 30, 40대 젊은 연구자는 갈수록 줄어드는 양상이다. 연구자 고령화는 연구력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 14개 주요 학술지에 게재된 일본 관련 논문 수는 2012년 1099편에서 2019년 762편으로 약 30% 줄었다.
이런 분위기는 비단 학계뿐만이 아니다. 일반인들의 일본에 대한 관심도 갈수록 식고 있다. 출판사 열린책들이 올 5월 펴낸 일본 베스트셀러 작가 사토 마사루의 대담집 ‘일본은 어디로 향하는가’는 독서가들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초판 1500부조차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 북방영토 협상을 이끈 외교관 출신의 사토 마사루는 지(知)의 거인 다치바나 다카시가 생전 자신의 후계자로 인정한 작가. 이 책은 사토 마사루가 아베 신조 전 총리를 ‘반(反)지성주의자’로 비판하는 등 국내 독자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을 다루고 있음에도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는 “일본 소재 책으로 국내 출판시장에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파워라이터가 현저히 줄어 요즘에는 한두 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원인이 뭘까. 박훈 교수는 학계를 포함한 우리 사회 전반에 ‘저팬 패싱(일본 무시)’ 현상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과거에는 일본이 미워도 배울 게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지만, 2000년대 들어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그마저도 사라졌다는 것. 2000년대 이후 태어난 젊은 세대일수록 이런 경향이 더 강하다. 이와 관련해 최근 교육부가 발표한 ‘2022 개정 교육과정’은 젊은층의 저팬 패싱을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교육부가 2025년부터 적용되는 고교 일반 선택과목에서 일본사가 포함된 동아시아사를 제외했기 때문이다. 이에 동양사학회 등 6개 학술단체가 교육부 방침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문제는 일본의 국력이 우리가 패싱할 수준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국제통화기금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은 4조9105억 달러로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다. 더구나 동아시아에서 중국이 지역 패권국으로 부상하는 상황에서 일본의 전략적 가치는 각별할 수밖에 없다. 일본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중국을 견제하고 일본을 지렛대로 우리 국력을 극대화하려면 좋든 싫든 일본을 잘 알아야 한다. 극일(克日)을 외치기 전에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부터 새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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