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근심 없이 술과 쾌락에 탐닉한다는 고백, 게다가 만고의 진리라 믿었던 선현들의 책조차 다 믿지는 못하겠다는 선언이 별스럽다. 이런 상궤를 벗어난 발상이 왜 나왔을까. 치기어린 일탈처럼 보이지만 기실 현실 정치에 대한 실망감을 토로한 지독한 아이러니로 보인다. 중원 땅을 금나라에 내주고 남쪽 구석에 안주하던 남송 조정의 안일과 무능을 비판해왔던 시인. 환락에 취한 저들이 무슨 나라 걱정할 여유가 있으랴 질타한다. 옛 경전은 혹 애국 애족을 논하고, 혹 정치의 도리를 설파했을지 모르지만 현실은 때로 전도된 가치로 뒤덮일 수도 있음을 경계한다. 소나무와의 실랑이에서 자기 각성의 몸짓을 드러낸다. 흠뻑 취해 쓰러졌을지언정 그 누구의 도움도 단호히 거부한다는 강고한 의지로 읽힌다.
무장으로 명성을 떨쳤으면서도 시인은 ‘장자’ ‘맹자’ ‘사기’ 등을 곧잘 활용할 만큼 고전에 밝았다. ‘옛사람의 책, 전적으로 믿을 순 없다’는 구절은 맹자가 ‘서경(書經)의 내용을 전적으로 믿느니 차라리 없는 게 낫다’라 한 말을 활용한 예다. 기록의 진위를 잘 판별하라는 맹자의 원래 취지와는 상관없이 시인은 그 화법만을 따왔다. ‘서강월’은 곡조명으로 내용과는 무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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