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올해보다 8.9% 늘어난 607조7000억 원의 내년도 예산안을 지난주 통과시켰다. 정부 제출 예산안보다 3조3000억 원 늘어난 ‘초팽창 예산’이다. 600조 원을 넘은 것도 사상 처음이다. 문재인 정부 첫해 400조5000억 원이던 예산은 5년 만에 51.7% 증가했다. 내년 한국의 국가채무는 5년 전 660조2000억 원에서 1064조4000억 원으로 61.2%(404조2000억 원) 늘었고 그 사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36%에서 50%로 급속히 증가해 국가 신용등급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이번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는 국민 혈세가 낭비되지 않도록 국회가 정부의 씀씀이를 감시하도록 한 헌법 제54조 ‘예산안 심의·확정권’의 취지가 심하게 훼손됐다. 내년 정부 예산안에는 단기 알바만 양산하는 ‘관제 일자리 사업’, 효과가 의심되는 일부 ‘그린뉴딜 사업’ 등 감액이 필요한 낭비요인이 많았다. 그런데도 국회는 지출 규모를 더 늘렸다. 작년에 이어 국회가 2년 연속 예산을 늘리면서 예산안을 한 푼이라도 줄여 통과시키던 국회 관행은 완전히 무너졌다.
증액 과정과 내용은 더 문제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선후보의 요구에 따라 지역화폐 발행 규모를 6조 원에서 30조 원으로 늘리는 데 필요한 예산 증액 등을 고집하다 여야 협상이 결렬되자 단독으로 본회의 통과를 밀어붙였다. 여당의 예산 증액을 ‘매표 행위’라고 비판하던 국민의힘은 지역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 4000억 원 늘자 목소리를 낮추고 반대, 기권표를 던지는 데 그쳤다. 지역구 예산을 전리품으로 챙기고 물러난 모양새다. 그러면서 여야는 연구개발(R&D), 국방 예산을 깎았다. 반도체·배터리 산업에 국가 지원을 늘리는 선진국의 움직임, 급증하는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은 현금 퍼주기 요구, 지역구 이기주의 앞에서 무시됐다.
정부 여당은 가파른 예산 증액이 코로나19 대처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변명하지만 현 정부의 예산 포퓰리즘은 그 이전부터 중증이었다. 정부가 매년 예산 규모를 7.2∼9.5%씩 늘릴 때 여당은 선거용 예산을 더 요구했고, 야당은 브레이크를 걸기에 매번 실패했다. 5년간 이명박, 박근혜 두 정부를 합한 것보다 더 많은 나랏빚이 쌓이는 데에 여야 모두 공범 역할을 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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