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얼마’라는 식의 경제적 가치로서만 국가의 재난 상황을 평가하는 것에 대해 우려스러움을 표한다.”
중국발 요소수 부족 사태가 벌어진 지난달 11일. 호주에서 2700만 원어치 요소수를 받아오기 위해 쓰이는 군 수송기의 왕복 항공유가 1억 원에 달한다는 지적이 나오자 국방부 관계자는 정례 브리핑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시 군은 공중급유수송기(KC-330 시그너스)를 호주로 보내 2만7000L의 요소수를 긴급 공수했다. 국방부는 수송기가 이륙하고 호주에 도착한 뒤 요소수를 받아 귀국해 하역하는 전 과정을 시간대별로 상세히 언론에 홍보했다.
수송기 투입에 대해 국방부는 “국가 재난 상황인 만큼 전국적인 교통, 물류 대란이 우려되는 긴박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수송기 투입에 대해 군 내부에서조차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야당은 “(긴급 공수한) 요소수는 하루 사용량의 4%가량”이라며 “요소수 대란을 대략 57분 늦추는 효과가 있다. 청와대는 기름값 1억 원을 내고 요소수 ‘쇼’를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당연히 수송기 투입과 홍보가 적절했는지를 두고 뒷말이 무성했다. 무엇보다 수송기를 투입하고 이를 홍보하라는 청와대 지시에 대한 군 내 여론은 들끓었다고 한다. 군 고위관계자들 역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군 관계자는 “국방부 차원에서 ‘홍보가 오히려 역풍을 불러올 수 있다’는 취지의 우려 사항을 전달했으나 홍보에 대한 청와대 입장이 확고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위기 상황에 닥쳤을 때 국민적 불안감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군을 선제적으로 투입하는 건 필요한 조치일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 수송기 투입은 임무 수행의 주체인 군에서조차 환영받지 못했다. 그리고 이런 불만의 이면엔 현 정부의 평시 재난 위기 대응에 군이 홍보 목적으로 지나치게 희생되고 있다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올해 초 정부는 질병관리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접종 대응 추진단’ 내에 3성 장군이 본부장을 맡는 백신 수송지원본부를 설치했다. 출범 직후인 2월 정부는 공항부터 물류창고, 접종센터까지 백신이 수송되는 과정 전반은 물론이고 모의훈련 현장 등을 상세히 홍보했다. 하지만 10개월이 지난 지금, 묵묵히 임무를 수행 중인 특수전사령부 요원들은 상당한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실탄 대신 가스총과 진압봉, 보디캠을 소지한 채 1만 회 이상 작전을 수행하면서 하루에 반나절 넘게 근무하는 요원들도 있는가 하면 최근엔 열악한 숙식 환경에서 생활하는 파견 요원들의 처우가 논란이 됐다. 부대 관계자는 “졸음운전 때문에 사고가 난 적도 있다”고 전했다. 현재까지 백신 호송 임무를 수행하다 발생한 차량사고는 20건이 넘는다.
무엇보다 현장에서는 임무 수행이 장기화되면서 고유의 임무로 복귀하지 못하고 있는 요원들의 사기가 나날이 저하되는 점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미국과 달리 총기 소유가 불법인 한국에서 특수전을 수행하는 인력을 백신 수송에 투입하는 게 적절하냐는 근본적인 의구심마저 제기되고 있다. 2년째 군이 수행 중인 코로나19 검역지원 임무 역시 “언제까지 군 병력이 투입되어야 하느냐”는 말이 나온다. 한 군 관계자는 “호송 임무를 민간에 외주를 주거나 하는 방안이 이제는 검토돼야 한다”면서 “필요할 때 빼다 쓰고 다시 돌려보내지 않는 현 상황이 매우 아쉽다”고 토로했다.
명분과 실리 모두가 약해진 임무가 지속될수록 “급할 때 군대는 땜빵용”이라는 자조가 장병들의 사기를 갉아먹고 있다. 게다가 평시 군 본연의 임무인 훈련은 남북 관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로 장병들이 땀 흘리는 사진 한 장조차 제대로 홍보하지 못하는 게 군의 현실이다. 임기 말로 접어든 지금, 국가를 수호한다는 장병들의 ‘국방(國防) 효능감’을 위해 정부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