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눈높이에 맞춘 설계[임형남·노은주의 혁신을 짓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7일 03시 00분


‘숨숨하우스’는 주변 이웃과 불화를 피하고 편안하게 고양이를 돌볼 수 있도록 지어진 주택이다. 가족이 된 고양이의 습성을 고려해 밖을 바라볼 수 있는 창턱을 계획하고 화장실이나 베란다 등 개별적인 공간을 따로 마련했다. 박영채 제공
‘숨숨하우스’는 주변 이웃과 불화를 피하고 편안하게 고양이를 돌볼 수 있도록 지어진 주택이다. 가족이 된 고양이의 습성을 고려해 밖을 바라볼 수 있는 창턱을 계획하고 화장실이나 베란다 등 개별적인 공간을 따로 마련했다. 박영채 제공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대표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대표
휴대전화를 열고 아무 생각 없이 유튜브에 접속해 볼 때가 많다. 재미있는 것은 다른 포털 사이트들과 달리 유튜브는 처음 접속하는 주소가 같아도 펼쳐지는 세상은 개개인마다 다르다는 점이다. 개인의 기호를 파악하고 계속 그에 맞는 동영상을 추천해준다. 목적이 있어서 들어가는 경우에는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지만, 무심결에 들어가면 유사한 동영상을 계속 보게 된다. 그 안에서 나는 게으르고 수동적인 사용자가 된다.

요즘 내가 가장 많이 추천받는 영상이 고양이 키우는 사람 이야기들이다. 보다 보면 사람과 고양이가 어떻게 만나고 어떤 방식으로 살고 있는지 알게 된다. 조회수가 몇백만이 되는 동영상이 꽤 많다. 한참 보고 있으면 신기하기도 하지만 마음이 따뜻해진다.

인간은 아주 오랜 시간 동물과 더불어 살아왔다. 사실 인간이 동물을 기를 때는, 개는 집을 지키고 고양이는 쥐를 잡고 소는 일손을 거들게 하는 등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 의미가 많이 달라졌다. 가축이 아니라 반려동물이라고 부르는 가족이 됐다. 생활을 보조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온기를 주거나 정서적 안정을 위해 필요한 존재로 바뀐 것이다. 그건 아마도 현대로 접어들며 인간의 환경이 많이 바뀐 것과 도시화에 따른 여러 부작용에 대한 대응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저출산과 고령화지수의 증가가 무척 심각한 수준이라며, 가끔 신문에 기획기사로 크게 실린다. 가까운 일본의 예를 들면서 사회가 탄력을 잃게 되고 고독사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인구의 감소는 보통 문명의 말기에 일어나는 현상이고 오래전 그리스나 로마도 그랬다고 하는데, 중요한 것은 생각 이상으로 훨씬 더 혁신과 변혁이 필요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족의 개념이 가장 많이 바뀌었다. 친척까지 아우르는 가족의 범위에서 지금은 개인이 전부인 ‘1인 가구’가 많아져,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1인 가구 비율이 31.7%(664만3354가구)라고 한다.

사실 인간은 외딴섬처럼 혼자 살 수 없는 존재다. 생활의 불편함이나 위험도 존재하지만 무엇보다 누군가와 정서적 교류가 없이 사는 고독에 대한 문제가 가장 심각하고 시급하다. 그래서인지 요즘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여기며 사는 집이 늘고 있다. 올해 최초로 통계청에서 조사해본 결과 인구의 15%(약 312만 가구)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다.

‘숨숨하우스’의 야경. 고양이의 습성을 고려한 계단과 캣타워 등이 외관에서도 확인된다. 박영채 제공
‘숨숨하우스’의 야경. 고양이의 습성을 고려한 계단과 캣타워 등이 외관에서도 확인된다. 박영채 제공
최근 비유에스라는 젊은 건축가 그룹이 낸 ‘가가묘묘’라는 책이 있는데 고양이와 사는 많은 가족의 집이 등장한다. 고양이를 기르기 위해 설계 초기 단계부터 고려한 경우도 있지만 계획에도 없이 어느 날 집으로 길고양이가 들어오며 생활이 바뀌고 설계가 바뀐 경우도 있다. 심지어 건축가 자신들도 사무실로 밥을 얻어먹으러 오는 길고양이 두 마리를 거두고 있다. 고양이를 이해하기도 하고, 또는 고양이를 당최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이가 되어 버린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건축가는 고양이와 함께 살면서 달라진 생활방식이나 가치관 같은 게 있냐고 물어본다. 건축주는 “저는 쉬는 걸 잘 못하는 성격인데 고양이들을 보면 ‘아, 저 친구들은 정말 잘 쉬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쉬는 방법을 배운다고 할까요?”라고 대답하고, 그런 방식을 공간의 구성에 반영한다. 이제까지 우리가 경험했던 것과는 다른 집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도 그런 집을 한 채 설계했다. 3년 전 서울 어느 경사진 동네의 맨 끝, 산과의 경계지점에 땅을 구입한 분이 찾아와 아주 특이한 주문을 했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 흔히 요즘 ‘캣맘’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집을 짓고 싶다는 것이다. 캣맘들은 인터넷 모임을 만들어 서로 정보를 교류하기도 하고 같이 구호활동을 하기도 하는데, 같이 모여서 살면 어떨까 싶어 집짓기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고 한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집은 예전에도 설계해 본 적이 있었지만 뭔가 좀 더 세심한 설계가 필요할 것 같았다.

가족이 된 고양이의 눈높이와 습성을 고려해 밖을 바라볼 수 있는 창턱을 계획하고 화장실이나 베란다 등 서로 독립적인 개별적인 공간에 대한 고려도 있어야 했다. 일반 마루나 매끄러운 바닥재는 고양이들의 관절에 좋지 않아 두께가 두껍고 미끄럼 방지가 되는 장판을 쓰고, 벽의 재료도 긁힐 때의 손상을 줄일 수 있는 내구성이 강한 재료로 골랐다. 좁은 곳도 올라타고 잘 넘어 다니는 고양이의 습성에 맞는 선반 등을 달아 캣타워 역할을 하도록 했고, 현관을 열었을 때 바로 나가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방묘문의 필요성도 알게 되었다. 방문에도 구석에 고양이들이 들락거릴 작은 전용문을 두고 외부 베란다에도 방묘창을 달았다.

반려동물과의 삶을 위한 건축이 등장하듯 앞으로도 가족이 변하고 개인이 변하는 시대의 흐름에 맞는 주거환경에 대한 고민은 계속해야 할 것이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숨숨하우스’는 주변 이웃들의 눈치를 보거나 불화를 피하고 좀더 편안하게 고양이를 돌볼 수 있도록 자연이 가깝고 시선으로부터 독립된 곳에 지어졌다. 급변하는 환경에 적합한 공간을 만드는 데 앞서 가족의 범위, 이웃의 범위가 확장되듯 사람들의 생각 또한 편견이나 선입견을 벗어나 더욱 넓어지고 유연해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반려동물#설계#반려견#반려묘#숨숨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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