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주재로 9, 10일 열리는 ‘민주주의를 위한 정상회의’에 대한 중국의 반발이 격렬하다. 중국은 ‘민주: 인류의 공동가치’라는 주제로 맞불 형식의 국제포럼을 열었고, 중국식 민주 제도의 우월성을 내세운 ‘중국의 민주’ 백서, 미국식 민주주의의 폐해를 열거한 ‘미국의 민주 상황’ 보고서도 잇달아 냈다. 여기에 미국이 베이징 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까지 발표하자 중국은 “결연히 반격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미국의 이념적 도발에 중국은 유례없이 전면적 공세를 펴고 있다. 과거 중국은 큰 나라를 이끌고 신속한 부강을 이루려면 강력한 통제가 불가피하다는 방어논리를 내세웠다. 덩샤오핑은 “우리 체제의 강점은 효율성이다. 우리는 결정이 나면 바로 실행에 들어간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제 중국은 시진핑 주석이 창의적으로 제기했다는 ‘전 과정 인민민주’를 내세우며 진짜 민주주의가 뭔지를 두고 미국과 한판 붙어 보자고 나섰다.
미중 대결은 이제 국제정치의 현실이 됐다. 쇠퇴하는 패권국과 부상하는 도전국의 대결이 평화로울 수 없었음은 과거 수많은 강대국의 명멸사에서 알 수 있다. 무역과 기술, 규범, 군사 분야로 확대돼 온 미중 대결은 이제 이념과 체제 경쟁에까지 이르렀다. 수십 년간 세계를 갈라놨던 미소 냉전의 재연, 신(新)냉전의 도래가 아닐 수 없다. 미국에선 수십 년 냉전질서를 무너뜨린 봉쇄(containment) 정책의 재가동을 외치는 목소리도 심심찮게 나온다.
민주주의 정상회의는 중국 러시아 등 전제(專制) 국가에 맞서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복원하겠다는 바이든의 대선 공약에 따른 것이다. 대만을 포함해 110개국이나 참여하는 화상회의에서 과연 어떤 성과가 나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전선은 선명하게 그어졌다. 하지만 정상회의 초대장을 받지 못한 오랜 동맹과 우방에선 불만이 터져 나왔고, 백악관의 초청 기준을 둘러싼 논란과 잡음도 적지 않다.
이번 정상회의가 오히려 역풍을 부를 수 있다고 우려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현실주의 국제정치 학자들은 보편가치를 내건 자유주의 대외정책으로는 강고한 민족주의 노선을 이길 수 없다고 설파한다. 중국은 오히려 미국을 향해 ‘중병(重病) 든 난장판 나라’라며 손가락질하고 있다. 특히 대선 결과에 불복한 의사당 난입 사태를 들어 조롱한다. 이런 중국의 선전공세가 미국과 척을 진 권위주의 독재자들의 심정적 공감을 얻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민주주의의 가치를 강조할 수밖에 없는 게 바이든이 처한 국내 정치 현실이다. 바이든은 대외적으론 독재자들과 대결하면서 국내적으로 전임자의 포퓰리즘 그늘과 싸우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차기 대선 출마를 벼르는 터에 바이든의 임기 1년 차 지지율은 벌써 바닥 수준이다. 당장 내년 중간선거에서 의회 권력을 공화당에 내주면 조기 레임덕에 허덕일 것이라는 위기감이 바이든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바이든은 지금 트럼프와의 차별성을 놓고 분투하고 있다. 소름 끼치는 악행을 저질러 온 독재자들에게도 친밀감을 과시하던 트럼프다. 심지어 시진핑의 주석 임기 제한 철폐 소식을 듣고선 “그는 이제 종신 대통령(주석)이다. 훌륭하다”고 농반진반(弄半眞半) 부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나라 안팎으로 2개 전선에서 전쟁을 치르는 바이든이 국내에서 자신감을 얻기 전까진 민주주의와 인권을 앞세운 ‘편 가르기’식 대외정책 기조도 누그러지긴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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