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내리는 비와 잿빛 하늘은 멜랑콜리한 파리의 겨울을 대변한다. 멀쩡한 사람도 우울증이 생긴다는 이 겨울엔 국물 음식이 간절할 때가 많다. 이 시기를 이기는 방법 중 하나는 가슴속까지 뜨거워지는 프랑스식 생선탕 부야베스를 먹는 것이다.
우리네 매운탕과 제법 닮은 부야베스는 기원전 600년경 마르세유 지역에 국가를 건설한 고대 그리스에서 기원을 찾을 정도로 오랜 세월 동안 지중해 사람들에게 사랑받아왔다. 이 음식은 마늘, 양파, 토마토, 월계수 잎 등을 넣고 올리브 오일과 함께 볶다가 사프란이나 아니스 같은 향신료, 감자와 토막 낸 생선을 넣고 끓는 물에 1시간 정도 뭉근하게 끓여내는 방식으로 만드는 일종의 생선 스튜 요리다. 그 이름의 어원이 ‘끓으면 불을 줄여야 한다’라는 프로방스어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이 어떤 음식인지를 말해준다.
과거 생선을 팔다 남은 잡어들을 넣고 바닷물과 함께 끓여 서민들의 음식으로 사랑받던 부야베스는 이제는 마르세유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에서도 즐길 수 있는 고급 요리로 변신했다. 향토 음식을 사랑하는 셰프의 애정에서 비롯된 메뉴지만 부야베스를 제대로 서비스하는 레스토랑은 아무 생선이나 넣어 만든 음식에 이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불문율을 지키고 있을 정도다. 1980년대 관광객들을 상대로 엉터리 부야베스를 내는 레스토랑이 늘자 마르세유 지역 유명 셰프들이 결성한 협회에서 내린 결정이다. 이 협회에서 정한 규정에 따르면 조피볼락, 숭어, 눈동미리, 쏨뱅이, 백쏨뱅이, 달고기, 성대, 붕장어, 아귀 중 반드시 4종류 이상의 생선을 넣어야 부야베스라고 할 수 있다.
헤밍웨이부터 마티스에 이르기까지 당대 유명인사들의 사교 공간으로 유명했던 몽파르나스 카페 거리에 위치한 유서 깊은 레스토랑, 르 돔은 단골로 찾는 곳이다. 김연아 선수가 파리에서 열린 국제대회를 마치고 들렀던 곳으로도 알려진 이 유서 깊은 레스토랑은 이웃한 거리에 생선 가게도 함께 운영하는 생선 요리 전문점이다. 찬 바람이 불면 홀로 굴 12개와 샤블리 와인 한 잔을 즐기기 위해 이곳 구석진 창가에 자리를 잡기도 한다.
파리의 르 돔에서 즐기는 부야베스는 앞서 언급한 생선을 넣어 진하게 우려낸 생선 국물이 먼저 나오고 손님이 보는 앞에서 서빙하는 직원이 나이프와 포크를 이용해 능숙한 솜씨로 생선을 발라내어 접시에 따로 담아준다. 말린 빵인 크루통과 매콤한 마늘 소스인 루유를 국물에 넣어 함께 먹다 보면 금세 속이 든든해진다. 우리네 매운탕과 달리 고춧가루를 사용하지 않지만 걸쭉하고 담백한 국물 맛은 음습한 겨울을 이겨내는 힐링 음식으로 이보다 훌륭한 것은 없다. 거기에 로제 와인이나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을 곁들였을 때 산해진미가 부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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