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를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호주 총리와의 공동기자회견에서 베이징 겨울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 여부를 묻는 질문에 “한국 정부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을 비롯한 어느 나라로부터도 (보이콧) 참가 권유를 받은 바 없다”고도 했다. 중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한국은 미국과의 굳건한 동맹을 기반으로 삼으면서 중국과도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해 나가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청와대와 외교부가 지난주부터 밝힌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지만 그 무게는 다르다. 미국이 중국의 인권 탄압을 들어 외교적 보이콧을 발표한 이래 청와대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했고, 외교부 차관은 “직전 주최국의 역할을 하려 한다”고까지 했다. 여기에 대통령까지 나선 것이다. 그래서 ‘(현재로서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어느덧 ‘보이콧은 없을 것’이라는 불변의 방침으로 들리게 됐다.
물론 중국의 ‘늑대전사 외교’에 핵잠수함 동맹으로 맞서는 호주처럼 서둘러 보이콧 동참을 결정한 나라들과 한국의 처지가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보이콧에 호응하는 듯하면서도 사실상 보이콧은 아닌 방안을 고심하는 일본보다는, 전통적으로 미국 추종에 거부감을 드러내 온 프랑스의 보이콧 동참 거부 쪽에 가까워 보이는 게 사실이다. 당장 한국의 태도는 중국으로부터 “올림픽 한 가족다운 풍모”라는 ‘칭찬’까지 들었다.
미중 갈등 속에 한국은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이름 아래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 줄타기 외교를 하고 있다. 우리 안보를 의존하는 동맹국과 최대 교역국인 이웃 나라 사이에서 국익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줄타기는 고난도 곡예다. 자칫 발을 잘못 디뎌 추락하면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더욱이 미중이 이념 대립으로 치닫는 상황에선 한국이 올라탄 외줄은 더욱 위태롭게 출렁거릴 수밖에 없다.
미중 간 지혜로운 외교를 위해선 분명한 원칙과 규범 아래, 특히 보편가치와 국가이익 사이에서 사안별 균형을 잡아야 한다. 그래서 정교한 메시지 발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번에 한국은 보이콧 논란의 근원인 중국의 인권 탄압에 대해 어떤 우려 표명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중국을 거드는 것처럼 비쳤다. 미국의 오해를 부를 메시지 관리의 실패가 아닐 수 없다. 동맹이라고 모든 걸 이해해줄 것이라 착각해선 안 된다. 줄타기도 실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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