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적도기니’에서도 미중 갈등[특파원칼럼/김기용]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14일 03시 00분


뉴욕 워싱턴 마주 보는 곳에 군사기지 건설 추진
아프리카에 장기간 공들인 中 움직임 주시해야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중국 베이징에 있는 주요 대학엔 흑인 유학생이 많다. 지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온라인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늘었지만 그전까지는 학교마다 흑인 유학생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대부분 중국 정부로부터 장학금을 받고 온 아프리카 국가 학생들이었다. 중국이 똑똑한 아프리카 학생들을 많이 선발해 교육시켜 돌려보내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학생들은 대부분 ‘친중국’ 성향일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중국과 아프리카의 관계가 더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이 아프리카에 공을 들인 건 꽤 오래전부터다. 1989년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 이후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당시 대규모 유혈 진압으로 서방 국가들의 제재에 직면한 중국은 아프리카로 눈을 돌렸다. 각종 국제회의에서 아프리카 국가가 행사하는 한 표는 미국 등 선진국의 한 표와 동일하다. 유엔에서 투표권을 행사하는 아프리카 국가는 54개로 유엔 195개 회원국 중 약 28%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유엔식량농업기구(FAO),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국제전기통신연합(ITU) 등 국제기구 수장을 중국인들이 꿰찬 것도 중국의 아프리카 ‘구애’가 통했다는 증거라는 해석이 많다.

그동안 중국과 아프리카 교류는 경제 분야에 집중돼 있었다. 중국은 시진핑 주석의 핵심 경제 정책인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 중앙아시아 유럽을 연결하는 육상 해상 실크로드)’를 앞세워 아프리카에 막대한 투자를 해 왔다. 최근엔 코로나19 백신 지원 등도 증가하고 있다. 시 주석은 지난달 29일 “내년까지 아프리카에 백신 10억 회분을 추가로 제공하겠다”고 했다. 미국 등 서방 선진국이 아프리카에 관심을 덜 쏟는 사이 중국이 두둑한 현금과 백신을 무기로 장악력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오랫동안 공들인 아프리카를 미국 견제를 위해 군사적으로 이용할 속내를 처음으로 드러냈다. 뉴욕 워싱턴 등 미국 동부 주요 도시들과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 서아프리카 대서양 연안국 적도기니에 상설 군사기지 건설을 추진 중인 것이다. 중국은 2017년 동아프리카 지부티에도 군사기지를 건설했다. 이 지역은 자원 수송 등과 관련한 지정학적 요충지로 세계 강대국들이 모두 경쟁하는 곳이다. 중국의 진출도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적도기니는 상황이 다르다. 중국이 이곳에 군사기지를 세우면 이는 오로지 미국을 겨냥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일부에선 이 사건을 과거 소련이 미국 턱밑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려던 것에 비유하기도 한다. 스티븐 타운센드 미군 아프리카사령부 사령관은 4월 상원 청문회에서 중국이 대서양 쪽에 기지를 만드는 것을 두고 “가장 심각한 위협”이라고 했다.

한반도는 적도기니보다 더 중요한 지정학적 요충지다. 미중 갈등이 적도기니에서 터진 것처럼 한반도에서 터지지 말란 법은 없다. 미중 갈등이 고조되면 될수록 더 그렇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스스로 돌발 상황들을 통제할 수 있도록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 사회에서 정보 수집 능력과 분석 능력을 키우고 미중의 움직임을 늘 주시해야 하는 이유다. 이런 시기에는 외교관 정치인 등 전문가들의 작은 실수 하나가 모든 국민을 힘들게 하고 한국을 위기에 빠뜨릴 수도 있다.

#적도기니#미중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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