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성호]‘잠깐 멈춤’은 결코 실패가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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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퇴 없다’는 건 원칙 아닌 고집일 뿐
겨울 이후 방역 전략도 지금 세워야

이성호 정책사회부장
이성호 정책사회부장
15일이면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된 지 696일째다. 지난해 1월 20일 첫 확진자 발생 때만 해도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이 이렇게 길어질 거라곤 생각 못 했다. 정부와 국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날씨가 더워지는 그해 여름이면 바이러스가 사라질 줄 알았다. 그러나 유행은 여름을 관통했다. 그래도 국민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백신이 나오면, 그 백신을 제때 맞으면, 그래서 정부 말대로 접종률 80%가 되면 상황이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국민의 기대는 한없이 이어졌고, 팬데믹 종식은 아직 실현되지 못했다.

코로나19는 변이를 거듭하며 저항하고 있다. 2021년 델타 변이가 전 세계를 지배했고, 내년에는 그 자리를 오미크론 변이가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설마 하며 얘기했던 코로나21, 코로나22가 현실화한 셈이다. 이쯤 되면 바이러스를 이기겠다는 인간의 목표 자체가 틀린 것일 수 있다. 방역전략을 근본적으로 다르게 보고 수립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단계적 일상 회복(위드 코로나) 시작 이후 정부의 방역정책은 줄곧 한쪽을 향했다. 확진자와 중환자가 급증하면서 부랴부랴 특별방역대책을 내놓긴 했지만 ‘서민 경제를 위해 후퇴할 수 없다’는 핵심 방침을 쉽사리 굽히지 않았다. 물론 경제는 위드 코로나의 한 축이다. 하지만 부실한 준비로 시작된 위드 코로나는 7000명대 확진자, 900명대 중환자, 100명에 육박하는 사망자라는 잔인한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방역과 경제의 균형이 무너졌다면 다시 맞춰야 한다.

정부 분위기도 달라졌다. 박수현 대통령국민소통수석비서관은 14일 한 라디오방송에서 “우물쭈물할 일은 없다. 조치는 이미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이전에 비해선 분명 진전된 발언이다. 그러나 덧붙인 설명을 듣고선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다. 박 수석은 “수요일, 목요일 상황을 한번 지켜보자”고 말했다. 월요일, 화요일 상황이 하루 이틀 만에 급변할 리 없다. 굳이 방역담당자가 아니어도 수요일 발표 때부터 확진자가 폭증하는 걸 2년간 국민 모두가 경험했다. 6일부터 시행된 특별방역대책 추가 조치의 효과가 나타날 수는 있다. 그렇게 증가세가 꺾일 수도 있지만, 그래 봤자 우상향 그래프를 수평으로 만들 뿐이다.

다만 정부 내 움직임이 빨라지면서 결단의 시기가 당겨질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자영업자 손실 보상 같은 실질적인 조치도 빠르게 이어져야 한다. 세부 조치가 늦어지면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지금 병상의 숨통을 트이게 하려면 확진자를 2000명대로 낮춰야 한다. 그 정도가 돼야 우리 의료역량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어쩌면 2, 3주 후 회복될 환자가 방역 강화 조치가 하루 늦어지면서 사망자 명단에 오를 수도 있다. 올겨울 방역을 한꺼번에 다시 푸는 것도 신중해야 한다. 그러기엔 변수가 너무 많다. 가장 큰 건 오미크론 변이다. 먹는 치료제 역시 최후의 히든카드 역할을 할지는 미지수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11일 김부겸 국무총리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 같다”며 “상황에 따라 변화된 전술을 사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살아 움직이는 바이러스에 대응하려면, 그보다 빨리 결정하고 행동하는 수밖에 없다.

#코로나19#위드코로나#잠깐 멈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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