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려보던 세상이 눈 아래로 내려가는 경험”[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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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 아이가 홀로 걷는 것의 의미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돌 무렵 많은 아이들이 혼자 걷기를 시작한다. 누구나 하게 되는 것이지만, 기어만 다니던 아이가 뒤뚱뒤뚱 휘청거리며 처음으로 두 발로 홀로 걷게 되는 그 모습에는 생각보다 많은 의미가 있다.

‘분리 개별화’ 과정의 이론 정립에 큰 공헌을 한 헝가리 출신 유대인 정신과 의사 마거릿 말러는 아이가 걷기 시작하는 시기를 분리 개별화의 과정 중 중요한 시기로 뽑았다. 걷게 되면 아이는 스스로 다니면서 뭐든지 해볼 수 있다. 유명한 정신분석 심리학자인 프로이트 박사는 이 시기 아이들이 유아독존적이라고 보았다. 그동안 기어 다니면서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아야 했던 세상이, 두 발로 서니 모두 눈 아래로 내려간다. 아이는 우쭐해져서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에 불타오르고 주도적이 되고 자율성도 생긴다. 엄마에게서 떨어져 세상을 좀 더 적극적으로 탐색해간다.

그런데 한창 자신감에 불타오르던 아이는 문득 ‘이렇게 떨어져 있다가 엄마가 나를 버리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든다. 그리고 생각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것도 깨닫는다.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든 아이는 엄마에게서 떨어져 나가다가 ‘내가 걷는다고 엄마 나 버릴 것 아니지?’라는 듯 이만큼 떨어져 놀다가 혹은 이만큼 걸어가다가 갑자기 뛰어와 엄마 품에 안기기도 한다. 독립에 대한 불안, 두려움 때문이다. 아이가 갑자기 와서 확 안길 때 “괜찮아. 잘했어” 하며 안아줌으로써 사랑을 다시 꽉 채워주는 것이 필요하다. 말러는 이것을 ‘정서적인 재충전’이라고 했다.

부모는 아이가 느낄 수 있는 이런 마음을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아이가 혼자 뒤뚱뒤뚱 걸어갈 때, 계속 주시하다가 아이와 눈이 마주치면 “우리 ○○, 아이고 잘하네” 하면서 응원하고 격려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가 힘을 얻고, 독립에 따른 두려움을 조금씩 극복해 나간다. 놀이터에서 아이가 혼자 잘 논다고, 잠깐 자리를 비우는 행동도 조심해야 한다. 이 시기 아이는 놀다가도 한 번씩 엄마를 찾고 달려와서 안긴다. 엄마가 없으면 굉장히 당황한다. 아이가 노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면서,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거려 주어야 한다. 엄마는 야구로 치면 언제든지 안전하게 받아줄 수 있는 홈베이스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시기 아이가 넘어질까 봐 너무 쫓아다니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엄마로부터 몸이 멀어지면서, 심리적으로 엄마와 자신이 분리된 인간이라는 것을 경험해 나가야 하는데, 너무 딱 붙어 있으면 아이의 분리 개별화 과정을 방해할 수도 있다. 따라서 지나치게 조마조마해하며 너무 안고 다니고 업고 다니면서 붙어 있지 않도록 한다.

아이는 걷는 것을 통해서 엄마와 신체적으로 분리되는 경험을 한다. 그리고 ‘걷기’라는 운동발달 과제가 완수되면 ‘독립’이나 ‘자율’이라는 심리적 발달이 따라온다. 아이가 편안히 심리적 발달을 이루기 위해선, 아이의 걸음마를 지켜보는 엄마의 시선에 ‘든든함’을 담고 있어야 한다. ‘걱정 마라, 엄마가 지켜줄게’ 하는 편안한 표정으로 아이를 지켜보면서, 아이가 한 발을 떼었을 때 엄마가 앞에서 환하게 웃으면서 격려하고 박수쳐주는 것이 필요하다. 아이의 우쭐함이 최고조에 달하도록 반응해준다. ‘이 아이가 정말 걸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스러운 눈초리는 아이가 독립심이나 자율성을 키워가는 데 좋지 않다.

어떤 부모들은 아이의 ‘걷기’를 꼭 완수시켜야 하는 숙제로 생각해서 아직 준비가 안 된 아이를 자꾸 걸어보게 하거나 빨리 걷지 못하면 지나치게 불안해하기도 한다. 내심, 걷는 것과 같은 발달지표를 이 아이가 똑똑한가 아닌가, 내가 아이를 잘 키운 것인가 아닌가로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보통 전문가들은 18개월까지는 안심한다. 운동기능 발달도 개인마다 편차가 있기 때문에, 그 정도는 괜찮다고 본다. 만약 걷는 것 외에도 다른 발달이 모두 늦은 것 같다면 한 번쯤 전문기관에 가서 상의해볼 필요는 있지만, 옆집 아이는 11개월 때 걸었는데, 우리 아이는 14개월인데도 아직 잘 못 걷는 것 같다고 아이를 자꾸 채근하지 말아야 한다.

아이의 심리적인 발달은 신체적인 발달과 물려 있다. 처음 이가 나고 엄마와 나를 다른 개체라고 알아가듯이 인간의 발육, 발달과 성장은 아주 묘하게 맞물려 있다. 이것은 매우 오랜 기간의 진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일들이다. 아이 발달의 여러 면이 모두 맞물려 있다. 아이가 아직 걸을 만큼 운동기능이 발달하지 않았다는 것은, 의기양양하게 엄마와 떨어질 정도로까지는 심리적인 준비가 안 되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런 시점에 혼자 걸어볼 것을 강요하거나 손잡고 걷다가 확 놓아버리는 행동은 조심해야 한다. 걷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커질 수 있다.

#아이#혼자 걷기#분리 경험#정서적인 재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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