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마이클 부블레 ― It's Beginning to Look a Lot Like Christmas
가장 강렬했던 첫 기억은 심형래의 크리스마스캐럴이었다. 당대 최고의 희극인 심형래는 유행어를 이용해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달릴까 말까”란 구절을 반복했다. 그의 인기만큼이나 판매량 역시 많았다. 심형래뿐 아니라 인기 개그맨 대부분 캐럴 음반을 발표했다. 최양락은 ‘네로 25시’의 네로로 캐럴 중간중간 “오, 신이시여”를 외쳤고, 신동엽 역시 “안녕하시렵니까? 캐럴을 불러드려도 되시렵니까?”라고 유행어를 넣어 캐럴을 만들었다.
이런 음반에 기획이나 정성이 들어갈 리는 만무했다. 그때그때 인기 있던 이들을 투입해 급조해 만든 캐럴은 일회용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1년 이상 가는 유행어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멋모르고 좋아했던 캐럴은 한 달 반짝하고는 사라졌다. 캐럴은 원래 그런 건 줄만 알았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음악을 좀 더 깊이 들으면서 캐럴이 그런 하찮은 음악이 아니란 걸 알게 됐다. 누군가 맥락 없는 유행어와 싸구려 반주를 넣어서 캐럴을 만들고 있을 때, 캐럴을 말 그대로 고전으로 만들고자 애쓰는 이들도 있었다. 빙 크로스비 같은 거인의 음악이 그랬다. 어린 시절 집집마다 한 장씩은 있는 것 같았던 그의 캐럴 음반. 빙 크로스비가 산타클로스 모자를 쓰고 있는 음반은 너무 흔해 소중함을 잘 몰랐지만 그는 그 음반을 통해 캐럴이 어떤 매력을 품고 있는지를 알렸다.
휴일과 연말이라는 이미지가 갖고 있는 따뜻함과 여유로움, 음악 자체에서 전해지는 고풍스러움이 빙 크로스비 캐럴엔 담겨 있었다. 이는 곧 캐럴의 미덕이기도 했다. 덕분에 1945년 처음 나온 빙 크로스비의 음반은 캐럴의 대명사가 됐다. 발매 75년이 지난 지금도 빙 크로스비의 그윽한 음성은 불멸로 남아 있다.
그리고 여기 또 하나의 고전이자 불멸을 노리는 음반이 있다. 재즈 팝 싱어 마이클 부블레의 ‘Christmas’다. 21세기에 등장해 팝과 재즈 모두를 능숙하게 소화하는 이 보컬리스트는 시대에 맞는 새로운 클래식을 만들어냈다. 빙 크로스비나 냇 킹 콜 같은 선배 보컬리스트처럼 그윽하고 포근한 크루너 보컬 스타일로 유명한 재즈 스탠더드를 해석한다. ‘White Christmas’나 ‘Jingle Bell’ 같은 고전뿐 아니라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같은 새로운 레퍼토리까지 추가했다.
앨범의 첫 곡 ‘It‘s Beginning to Look a Lot Like Christmas’에선 풍성한 오케스트라 선율이 흘러나온다. 이어서 “It’s Beginning to Look a Lot Like Christmas”라고 노래하는 마이클 부블레 목소리가 나올 때 감탄하게 된다. 마치 한 해의 다사다난함을 모두 안다는 듯 감싸주는 것만 같다. 이런 노래들 덕에 캐럴은 고전으로 남을 수 있었다. 이런 노래들 덕에 종교색을 벗어나 누구나 즐기고 위로받을 수 있게 됐다. 이 노래만큼이나 모두에게 포근할 연말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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