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의 무비홀릭]또 거리두기, ‘집콕’ 그대 위한 뒤끝작렬 영화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17일 03시 00분


천국처럼 시작해 지옥처럼 끝나는 영화 ‘미드소마’. 이열치열이란 말도 있듯, 짜증나는 ‘집콕’ 연말연시를 ‘뒤끝작렬’ 영화로 이겨내 보면 어떨까. ㈜팝엔터테인먼트 제공
천국처럼 시작해 지옥처럼 끝나는 영화 ‘미드소마’. 이열치열이란 말도 있듯, 짜증나는 ‘집콕’ 연말연시를 ‘뒤끝작렬’ 영화로 이겨내 보면 어떨까. ㈜팝엔터테인먼트 제공
[1] 위드 코로나는 물 건너갔고, 다시 ‘집콕’이에요. 전대미문의 감염병과 만난 지 2년이 되니, 자유를 구속당하는 일에 너무도 익숙해진 나 자신이야말로 코로나19보다 더욱 무섭게 ‘변이’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요. 어차피 바이러스가 박멸될 리는 만무하니, 이놈이 변이에 변이에 변이에 변이를 거듭하다 약한 감기가 되어 인류와 영원히 함께 사는 생존전략을 선택하기를 고대할 뿐이에요. 그때면, 왠지 무시무시한 심상을 불러일으키는 ‘델타’나 ‘오미크론’ 같은 이름 말고 ‘헬로키티 변이’ ‘이웃집 토토로 변이’ ‘피카추 변이’ ‘도라에몽 변이’ 같은 앙증맞은 이름을 변이 바이러스에 붙여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맞아죽어도 시원찮을 상상을 해보아요. 연말연시 집에서 긴 겨울잠을 자야 하는 그대들께, 집에서 챙겨 보면서 집콕의 짜증을 날려버릴 자극적인 영화들을 소개할게요.

[2] 자, 아름답고 완벽한 환상을 선물해줄 영화를 기대하셨는지? 아니에요. 이열치열. 짜증은 짜증으로 덮어야 해요. 보고 나면 더러운 기분이 지속되면서 사흘 동안 출근도 하기 싫은 뒤끝작렬 영화들이에요.

우선 ‘미드소마’(2019년)를 추천해요. 시골 외딴 마을로 룰루랄라 소풍을 떠난 청년들이 폐쇄적 공동체에서 천연덕스럽게 펼쳐지는 피의 축제를 목도하고 뜨악해하는 내용이에요. 매년 이 마을에서 의례적(?)으로 열리는 노인들의 ‘자살축제’는 과거 고려장보다 100배쯤 끔찍해요. 뭐랄까, 결혼생활 같은 영화랄까요? 즐겁게 시작해서 악몽으로 끝난단 얘기죠. 집단 광기에 의해 영혼이 잠식되어 가는 공동체 내부의 모습은 지금의 지구촌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여요. 이런 종류의 또 다른 작품으론 독일 거장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하얀 리본’(2009년)도 있어요. 잔잔하게 시작해서 고즈넉하게 종결되는데, 보고 나면 더럽게 찝찝해요.

닐 블롬캠프 감독의 ‘디스트릭트 9’도 꼭 보세요. 어느 날 남아공 상공에 외계인의 우주선이 고장으로 멈추고, 외계인들은 지구에서 살도록 격리 수용되지요. 근데 이들의 격리 지역은 절묘하게도 마치 게토나 할렘처럼 묘사되어요. 외계인들은 바퀴벌레를 빼닮은 역겨운 생김새죠. 하는 짓은 ‘진상’이고요. 난민들을 외면하고 격리하는 지구촌의 자화상을 포개놓은 듯한 이 영화는 주인공이 외계인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점점 바퀴벌레로 변해가는 모습이 단연 서글프고 구역질 나요. 놀랍게도, 외모가 끔찍하게 변해갈수록 그의 마음은 자유를 획득하지요. 여운이 긴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나면, 기분이 나쁜 건지 더러운 건지 감동한 건지 슬픈 건지 역정이 나는 건지 도통 모르겠는, 살바도르 달리의 녹아내리는 시계 그림을 보는 듯한 초현실적 하이브리드 감정을 경험하면서 족히 이틀은 멍∼해져요.

올여름 개봉한 인도 영화 ‘잘리카투’(2019년)도 추천해요. 도축장에서 도망친 물소를 잡으려 마을 남자들이 몰려들어요. 동네가 아수라장으로 변하면서 점차 인간과 짐승의 경계가 무너지는 내용이지요. 줄거리부터 비호감이죠? 보고 나면 거의 공황장애 직전까지 가게 되어요.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2008년)도 있어요. 나치 장교인 아버지를 따라 아우슈비츠 수용소 근처로 이사 온 귀염둥이 독일 소년 브루노의 이야기죠. 브루노는 철조망 너머 동갑내기 유대인 소년과 단짝친구가 되는데요. 브루노가 줄무늬 파자마를 입는 순간 미쳐버리기 직전까지 가는 공포 비슷한 마음의 허기가 파도처럼 밀려와요.

코로나19처럼 ‘죽어도 죽지 않는’ 존재가 등장하는 뒤끝 사흘짜리 영화들도 있어요. 제목부터 저질스러운 ‘해피데스데이’라는 공포영화죠. 생일에 끔찍하게 살해된 여자가 눈을 떠보니 또 생일이에요. ‘죽고 또 죽다 보면 언젠간 살 수 있다’는 일념으로 매일매일 죽는 여자의 이야기이지요. 듣기만 해도 짜증이 활화산처럼 폭발하지요?

[3] 요즘처럼 통제가 일상화된 삶을 마주하노라면 2021년 12월 지구는 어느새 역사를 거슬러 중세(中世)를 다시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불온한 생각마저 들어요. 이럴 때일수록 영혼의 자유까지 잃어선 안 돼요. 세상 그 무엇에든 길들여져선 안 돼요.

‘꾸뻬씨의 행복여행’(2014년)이란 영화를 보세요. 남에게 행복을 조언하던 정신과 의사가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찾아 떠나요. 불행을 피하면 행복일까? 원하는 걸 얻으면 행복일까? 주인공은 놀라운 깨달음에 이르러요. 행복은 인생의 목표가 아니라는 사실을요. 삶의 모든 과정에서 얻어지는 부산물이 행복이었던 거예요. 맞아요. 자유를 추구하는 한 이미 우린 자유예요. 헤밍웨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노인과 바다’(1958년)도 목이 터져라 외치잖아요? 파멸당할(destroyed) 순 있어도 패배하진(defeated) 않는다고요. 거친 풍랑을 이겨낸 늙은 어부 산티아고처럼 우리도 ‘Be calm and strong(차분하고 강인하라)’!

#거리두기#집콕#뒤끝작렬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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