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겋게 숯불이 타는 질화로 곁에서 보글보글 술 익는 소리를 들으며 한껏 들떴을 시인. 보나마나 술독 안에선 푸르스름한 밥알들이 개미 떼처럼 동동 떠오르고 있을 것이다. 새로 익은 술을 핑계 삼아 친구를 맞을 기대에, 눈이 내릴 듯 우중충한 저문 하늘조차 그저 정겹게만 느껴졌을 테다. 보글거리는 동동주의 숨소리조차 귀에 쏙쏙 담기는 이 호젓한 밤을 친구와 함께한다면 그 술맛이, 그 도타운 우정이 오죽이나 각별하랴. 스무 자짜리 초대장에 시인의 부푼 기대가 남실댄다. ‘술이나 한잔 같이할 수 있을는지’라며 조심스레 건네는 말 속에, 급작스러운 초대를 저어하는 시인의 세심한 배려가 숨겨져 있는 듯도 싶다. 친구는 이 제안을 달콤한 권주가로 받아들여 한달음에 달려오지 않았을까. ‘함께 동동주 비울 사람이 없어, 저녁 까마귀 울 때까지 기다리네’라 했던 두보의 씁쓸한 시구를 애써 떠올릴 겨를도 없이 말이다.
류십구(劉十九)는 백거이가 남쪽 강주(江州)로 좌천되었을 때 자주 어울렸던 초야의 선비로, 백거이가 다른 시에서 ‘바둑 두고 술내기 하느라 날 새는 줄 몰랐다’고 할 정도로 절친한 사이였다. 류십구는 류씨 집안의 열아홉째 자손이라는 뜻. 과거 대가족이 한 울타리 안에 살 때, 친동기건 사촌이건 상관없이 출생순으로 번호를 붙여 이름 대신 부르기도 했다. 다만 순번을 매길 때 남녀는 구분했다. 시인 원진(元유)을 원구, 류우석(劉禹錫)을 류이십팔이라고도 부르듯 이런 호칭은 꽤 흔하게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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