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달이 돌던 밤 의원에 누워 있는 너의 머리에 수건을 얹어 주었다 거기에 내가 들어 있지 않았다 밖에서 아이들이 공을 찼고 너는 머리통을 움켜쥐었다 다큐멘터리에서는 방금 멸종된 종족을 보여 주었다 우리는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안 사랑하는데 여기 있어도 될까 머리와 머리가 부딪혀 깨지는데 흰 달이 도는데 네가 누워 있는 여기로 아무도 오지 않았다 수건을 다른 방향으로 접어 너의 머리에 얹어 주었다 병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슬펐다
― 손미(1982∼)
분명 내 돈 주고 샀는데 받은 선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손미 시인의 시집이 딱 그랬다. 제목은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민음사, 2019년). 신간 시집을 둘러보다가 표지 제목을 만났을 때, 한눈에 반한 듯 잠시 멈춰 있었다. 세상을 사랑해도 될까, 묻다가 지쳤을 때였다. 세상은 그만두고 사람을 사랑하는 일마저 힘겨울 때였다. 아주 가끔 깨닫게 되는 사실인데 시는 거울과 비슷하다. 들여다보면 거기 자신의 얼굴이 보인다. 그날 나는 거울 같은 시집을 껴안고서 집에 돌아왔다.
오늘은 아끼던 시집에서 ‘한마음 의원’을 꺼내 소개한다. 내가 수고해서 읽었는데 남에게 위로를 받은 듯 느껴지는 작품이다. 우리 역시 한창 아픈데, 이 시에도 아픈 사람이 나온다. 제목을 보니 환자는 ‘한마음 의원’에 누워 있다. 머리가 아프지만 사실 아픈 것은 마음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서로를 잃어가고 사랑도 상실하는 멸종의 시대에 와 있다. 그렇게 한마음이 아니게 되었으니까 한마음 의원에서 백날 치료해도 나을 리 없다. 이렇게 건조하고 위태롭게 살아도 될까. 과연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시에서 이런 독백을 듣고 있으면 슬퍼진다. 반대로 이런 독백이 혼자만의 것이 아니어서 조금 기뻐진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