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좌우명은?” 이른 새해 계획을 세우다가 문득 궁금해져 지인들에게 물었다. 질문을 던짐과 동시에 흠칫 놀란 것은 ‘좌우명’ 세 글자가 놀랍도록 낯설고 조금은 촌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뒤이은 지인의 답변 하나가 이를 뒷받침했다. “좌우명…? 초등학교 때나 쓰지 않아?” 하지만 매년 다이어리 첫 장에, 어쩔 땐 책상머리에 부적처럼 새겨 넣는 고정된 글귀를 달리 표현할 방도도 없다.
사업을 하는 A의 좌우명은 ‘불성무물(不誠無物)’이라 했다. 정성이 없는 곳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뜻인데, 제품의 디테일에 목숨 거는 그의 평소 모습을 떠올리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매일같이 연습과 창작에 매진하는 아티스트 B의 좌우명은 ‘가장 바쁜 사람이 가장 많은 시간을 가진다’였다.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그의 시간관리에 대한 집념을 엿볼 수 있었다. 그 외 많은 이들이 뜻밖에도 즉답을 해왔는데, 하나하나 어쩜 그리도 주인을 닮았는지, 거짓말 조금 보태 좌우명과 주인을 나열해 놓고 ‘선 긋기’로 정답을 맞힐 수도 있을 것 같다.
좌우명은 필시 처한 상황과 목표에 따라 바뀌기 마련이지만 나의 경우 상대적으로 일관됐다. 학생 시절 좌우명은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로,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는 공자님 말씀이었다. 나서기를 좋아한다기보다 빼지 못하는 성격 탓에 자의 반 타의 반 늘 어떤 역할이든 맡고 있었는데, 설익은 마음에 넓은 관계와 잦은 만남은 활력과 동시에 부담을 주었다. 나의 좌우명은, 좋은 것은 본받고 나쁜 것은 경계하게 되므로 누구로부터도, 어떤 만남으로부터도 배울 점이 있다는 다짐이자 스스로를 향한 격려였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 현재까지 줄곧 이어진 좌우명은 ‘모든 것에는 그 나름의 의미가 있고, 선택의 결과는 현재에 달려 있다’. 삶이란 크고 작은 선택의 누적임을 매년 더 분명하게 실감한다. 선택하는 시기에서 그 결과값을 받아 드는 시기로 접어드는 탓이다. 주변만 보아도 삶의 한 구간에서 만나 한때는 나와 비슷하다고 여겼던 이들조차 이제는 가치관도 생활방식도 제각각이다. 하나의 선택이 다음 선택지를 재단하므로, 매 순간 선택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게 최선이었을까?’ 지난 선택에 의심이 드는 날이면 주문을 외듯 써내는 것이 오늘날 나의 좌우명이다.
가끔 삶이 ‘스피드 퀴즈’ 같다. 우유부단하게 있다가는 사람도 기회도 이미 저만치 멀어져 있다. 이 때문에 삶에도 주제문이 필요하다. 글에서 주제문이 명확해야 매 문장이 제 기능을 찾듯 삶에서도 주제문이 명확해야 매 순간이 제 몫의 기여를 한다. 그리고 이는 빠른 판단과 단단한 실행을 위한 지침이 된다. 고작 경구 하나가 나를 키웠고, 고작 문장 하나가 나를 지키는 것처럼.
빳빳한 새 다이어리의 첫 장을 눌러 펴고 글귀를 새긴다. 벌써 열 해 가까이 적어온 문장이지만 그 실천은 여전히 어려워 쓸 때마다 마음을 새로이 다잡는다. 이 문장 하나가 또 한 해, 나를 지켜낼 것이다. 그런 문장 하나 당신께도 깃들길, 덧붙여 함께 바란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