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 카슨(1950년∼)은 내게 학자의 시가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알려준 시인 중 한 명이다. 캐나다에서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 문학을 번역하고 가르치는 고전학자인 카슨은 평생 시를 써왔지만 스스로 시인이라고 부르기를 꺼려왔다. 그녀의 시에는 통상적으로 소설, 산문, 비평, 번역이라 일컬어지는 장르가 혼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에우리피데스, 호메로스, 사포, 소포클레스와 같은 고전이 현대적 양식으로 버무려져 있고 에밀리 브론테(1818∼1848), 횔덜린, 카프카 등 현대 작가들의 인생과 작품이 직접적으로 옮겨져 있다. 한 편의 시는 종종 수십 페이지에 이르러 보통의 장시치고도 너무 길다.
이것도 시라고 할 수 있을까? 꽤나 시적인 비평이 아닐까? 그녀의 작품을 두고 산문으로서는 성공했지만 시로서는 실패했다고 말한 비평가도 있었다. 그러나 이미 학계에 자리 잡은 마흔두 살에 첫 시집 ‘짧은 이야기들’(1992년)을 출간한 이후 숱한 문학상을 휩쓸며 독보적인 시세계를 구축한 현대의 가장 중요한 시인 중 한 명이 되었으니, 그 평도 다시 곱씹어보아야 할 말이 된 셈이다. 몇 년 사이 가쁘게 번역되고 있는 카슨 시집들 중에서도 ‘유리, 아이러니 그리고 신’(1995년, 황유원 옮김·난다·2021년)은 절창이다.
사랑은 비탈 아래로 굴러가는 바퀴와도 같았다고 말하는 여자. 사랑하는 남자로부터 너를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던 잊을 수 없는 밤을 곱씹으며 끔찍한 환영에 시달리는 여자. 이마에 거대한 가시가 박혀 있거나, 머리에 씌워진 게딱지를 벗으려 발버둥치는 사람의 이미지를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하는 여자. “왜 이 끔찍한 이미지들을 보고도 그 곁에 있는 거죠?/왜 계속 지켜보는 거예요? 왜/떠나버리지 않는 거냐고요?”라고 묻는 심리상담사에게 “어디로 떠나란 말인가요?”라고 대답하는 여자. 갈 곳 잃은 이 화자가 ‘에밀리 브론테 전집’을 들고 어머니 집에 방문하는 내용의 ‘유리 에세이(The Glass Essay)’는 이 책의 첫 순서에 실린 대표작이다.
카슨의 시답게 화자가 겪는 고통, 외로움, 욕망은 영국 소설가 브론테의 인생과 구분할 수 없이 뒤섞인다. 단순한 병치는 아니다. 평생 혼자서 황량하고 고독한 삶을 살다가 서른 살에 병으로 죽었다고 요약되곤 하는 브론테의 전기는 새로운 얼굴로 태어난다. 카펫을 비질하며 황야를 바라보았던 시간은 고독의 증거가 아니라 사랑의 필요에 관한 모든 것을 배우는 계기로, ‘폭풍의 언덕’의 인물 캐서린과 히스클리프를 움직이는 방식을 익히는 기회로, 삼백 년 후의 화자의 영혼과 공명하는 투명한 참조 문헌으로 재해석되어, 오래 넘실대는 고유한 문학 형식을 창안한다. 이것이 실패한 시나 성공한 산문 중 하나로 여겨져야 한다면 나는 차라리 장르 맹(盲)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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