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10년, 김정은의 현주소[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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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금수산 태양궁전에서 진행된 김정일 10주기 중앙추모대회에 참석한 김정은. 얼굴의 노화가 급속히 진행된 듯한 모습이다. 사진 출처 조선중앙방송
17일 금수산 태양궁전에서 진행된 김정일 10주기 중앙추모대회에 참석한 김정은. 얼굴의 노화가 급속히 진행된 듯한 모습이다. 사진 출처 조선중앙방송
주성하 기자
주성하 기자
확 늙어 보이는 김정은의 얼굴이 지난주 언론의 화제가 됐다. 김정일 10주기 추모대회에 등장한 김정은은 급격히 피부가 어두워졌고, 얼굴의 팔자 주름도 깊어졌다. 몇 달 보위부 감방에서 혹독한 정신적 육체적 고문을 받으며 취조받아도 저렇게까지 늙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50대의 얼굴로 나타난 김정은의 모습을 보니, 약 10년 전 김일성광장에서 했던 그의 첫 육성 연설이 떠올랐다. 2012년 4월 15일 김일성광장에 등장한 김정은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우리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며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자는 것이 우리 당의 확고한 결심”이라고 약속했다.

그 후 10년이 지났다.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겠다던 약속은 가장 황당한 거짓말이 됐다. 지금 북한은 원시시대로 돌아가고 있다. 시계 배터리가 다 떨어져 시간이 멈춘 세상, 라이터 가스조차 없어 아궁이에 불도 지피기 어려운 세상이 됐다.

북한 인민은 사료를 먹는 신세가 돼가고 있다. 지난해 2월에 비해 식용유, 설탕, 조미료 가격이 5배 이상 올라 대다수 사람들은 살 엄두도 내지 못한다. 한 대북 소식통은 “음식에 기름과 조미료를 넣을 수 없어 음식 맛을 포기하고 산 지 오래다”라고 말했다. 먹을 것을 살 돈조차 없으니 옷이라고 제대로 사 입을 수 있을까. 북한 거리는 점점 초라해지고 있다. 먹고살기 힘든 세상에 연료나 식수라고 제대로 보장될 리 만무하다. 지금 북한은 1990년대 중반 수많은 아사자가 나왔던 ‘고난의 행군’ 시기로 되돌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김정은이 지금 상황을 반전시킬 가능성은 없다. 도무지 방법이 없으니 자력갱생(自力更生)이라는 수십 년 되풀이된 케케묵은 구호만 외치고 있다. 최근엔 원료의 재자원화라는 구호를 회생의 마술봉인 듯 내세우며 연일 독려하고 있다. 재자원화란 한마디로 폐기물이나 쓰레기를 모아 재생해 쓰라는 말이다. 그런데 쓰레기도 잘사는 나라에 많은 법이다. 오랫동안 폐철, 폐동 등 쓸 만한 자원은 빡빡 긁어 중국에 팔았는데, 북한에 무슨 다시 가공할 쓰레기가 있겠는가. 마른 수건을 다시 쥐어짤 정도로 북한의 상황은 답이 없다. 북한은 경제 파탄의 원인이 대북(對北) 경제 제재와 코로나에 있다며 외부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 이것 역시 수십 년 되풀이된 상투적 변명이다.

북한 경제가 김정은의 노화 속도만큼 급속히 망가진 핵심 원인은 김정은의 거꾸로 간 정책 때문이다. 김정은이 외국에서 오랫동안 살았기 때문에 북한을 개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초기엔 있었다. 하지만 김정은은 개혁은 수없이 외쳤지만 개방과는 늘 반대되는 행보를 보였다. 코로나 사태 이후에도 북한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인적 왕래도 막는 극단적 봉쇄 정책을 폈다. 개방 없는 경제 개혁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대북 제재 역시 자초한 것이다. 미국 비영리기관 핵위협방지구상(NTI)에 따르면 김정은은 집권 10년 동안 129차례 미사일 발사 실험을 했다. 김정일 집권 18년 동안 16차례 미사일 발사 실험이 진행된 것에 비하면 연평균 15배나 많은 미사일 실험을 해댄 것이다. 핵실험도 김정일은 2차례 진행했지만 김정은은 4차례나 했다. 제재를 풀 마땅한 묘안도 없으면서 호전적 질주를 가속화한 것이다.

경제 파탄으로 사람들의 곡소리는 하늘을 찌르는데, 인권 탄압은 극에 달하고 있다. 살기 어려울수록 ‘소탕하라, 쓸어버리라, 짓부숴버리라’는 김정은의 지시가 계속 하달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걸핏하면 체포된다. 고문과 성폭행은 일상이 됐고, 형기는 점점 늘어난다. 정치범수용소 수감자 수도 확 늘었다고 한다.

김정일 시절에는 살기 어려우면 탈북이라도 했는데, 김정은 시절에는 그것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국경에 1∼2km의 ‘완충지대’를 설정해 접근하면 사살한다. 깡통을 촘촘하게 매단 철조망을 쳤으며, 그 너머에 다시 대못판과 지뢰를 잔뜩 깔았다. 조명에 쓸 전기도 없는데, 국경 철조망엔 고압 전류를 흘려보내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지난달 양강도에서 한 가족이 탈북하자 무조건 잡아들이라는 김정은의 불호령이 여러 차례 떨어졌다고 한다. 인민들은 얼어 죽고 굶어 죽는데, 김정은은 탈북한 몇 명을 잡는 데 집착하고 있다. 집권 10년 동안 김정은이 가장 확실하게 한 것은 북한을 탈출구 없는 거대한 수용소로 만든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는 지도자라기보다는 수용소장 노릇에 심취해 있는 것 같다.

#집권#10년#김정은#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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