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송충현]국민 편 가르기 세금에 납세자 신뢰 무너진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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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충현 경제부 기자
송충현 경제부 기자
“설마 실무자가 세금 관련 정부 보도자료에 그런 문구를 넣었겠습니까. 다 사정이 있어서죠.”

지난달 22일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2021년 주택분 종합부동산세 고지’ 보도자료 둘째 줄엔 ‘전 국민의 98%는 과세 대상이 아님’이란 문구가 적혀 있다. 납세는 신성한 국민의 의무다. 그런데 정부가 세금 관련 보도자료를 내며 도입부터 납세자와 비납세자를 나누는 ‘갈라치기’ 표현을 써놓은 건 아무래도 이상했다. 속사정을 물어보니 한 당국자는 “원래 들어있던 문구가 아니었다. 갑자기 추가됐다”고 말했다. 누구의 지시였냐고 묻자 그는 “위다. 우리가 자체적으로 결정한 건 아닌 것으로 안다”고 말을 아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여당과 정부가 신설하거나 개편해 온 조세 정책들을 돌이켜보면 누가 무엇 때문에 이런 이례적인 표현을 추가했는지 어느 정도 의문이 풀린다. 그간 당정청이 집 부자에게 세금을 무겁게 매기는 세제를 만들고 편 가르기 선전을 해온 걸 보면 종부세 고지 인원과 고지 금액을 설명하는 자료에 대부분의 국민은 내지 않는 세금이라는 이례적인 표현을 넣고도 부끄러운 줄 모를 만도 하다.

최근 불거진 양도세와 보유세 완화 움직임도 그렇다. 당정은 그간 부동산시장 급등 책임을 다주택자 등 집 부자에게 돌리며 보유세의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과 공정시장가액 비율 등을 올리는 공시가격 현실화로 압박해 왔다. 그러더니 이달 20일엔 난데없이 “보완책이 필요하다”며 보유세 완화 방침으로 선회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23일 페이스북을 통해 “세 부담 상한 조정과 내년 종부세 산정 시 올해 공시가격을 활용하는 것, 고령자 종부세 납부 유예 제도 등의 대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당정의 이런 갈지자 행보를 보는 납세자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를 처지다. 보유세 부담 급증은 지난해 정부가 공동주택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2030년까지 90%로 높이겠다고 발표했을 때부터 예견된 결과다. 그때는 못 들은 체 제 고집을 피우더니 대선이 있는 내년 3월 공동주택 공시가격 공개를 앞두고서야 부랴부랴 보완대책을 마련한다고 호들갑을 떤다.

시장은 바보가 아니다. 지금까지 행보를 보면 내년에 보유세가 완화된다 해도 언제든 다시 강화될 수 있다는 걸 모를 리 없다. 당정이 뚜렷한 철학이나 원칙도 없이 선심 쓰듯 풀어놓은 보유세 완화 카드에 대한 여론이 차가울 수밖에 없다. 당정이 조세 정책에 대한 신뢰를 잃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해야 한다.

국가는 국민들이 내는 세금으로 운영된다. 그래서 납세자들이 과세 요건과 효과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도록 세금이 투명하게 운용돼야 한다는 게 법에도 명시돼 있다. 그런데 국민을 대표하고 법을 만들어 집행하는 이들이 조세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을 키운다면 납세자들은 혼란스럽고 국가의 근간은 흔들린다. 내 표, 내 편만 보고 세금을 남발하고 세제를 주무를 수 있다고 믿는 정치 지도자라면 국민을 대표하고 국가를 이끌어 가기엔 함량 미달이다.

#기획재정부#갈라치기#국민 편 가르기 세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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