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신년 특별사면으로 31일 0시 풀려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사면 대상에서 빠졌다. 8월 가석방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제외됐다. 노무현 정부 때 국무총리를 지낸 한명숙 전 총리는 복권 대상에 이름을 올렸다. 이번 사면은 5개월 남짓 남은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 마지막 대규모 사면일 가능성이 높다.
박 전 대통령 사면은 어깨·허리 질환이나 불안 증세 등 개인의 건강 문제를 떠나 역사적 맥락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2017년 3월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 후 최순실(본명 최서원)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된 박 전 대통령은 내란과 반란수괴죄 등으로 1심에서 사형 선고까지 받았던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보다 긴 4년 9개월을 복역해 왔다. 탄핵 및 장기간 복역 자체가 한국 정치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박 전 대통령에겐 헌정 사상 초유의 ‘탄핵 대통령’이라는 정치적 낙인이 찍혀 있다. 그 자체로도 국정농단 사건의 역사적 책임은 감당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여기에 박 전 대통령의 건강 문제까지 고려하면 더 오래 수감생활을 시키는 것은 지나치다. 이번 사면이 헌정 중단의 국가적 불행을 역사의 한 페이지로 접고 미래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문 대통령이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판단을 분리한 것은 유감이다. 물론 두 전직 대통령이 구속된 사유는 다르다. 박 전 대통령이 정치적 성격이 짙다면 뇌물을 받고 다스(DAS) 자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징역 17년형이 확정된 이 전 대통령은 ‘개인 비리’ 성격이 더 강하다는 게 청와대와 법무부의 인식인 듯하다. 사면 여론에도 차이가 있고 복역 기간도 2년 1개월 남짓으로 짧다. 하지만 국민통합과 미래, 국격을 생각했다면 ‘일괄 사면’이 더 바람직했다. 재임 시절 금융위기 극복 등 국가에 기여한 점, 80세의 고령이라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었다.
이 부회장이 제외된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이 부회장의 경영 복귀로 이미 삼성의 미래 투자가 활기를 되찾고 있다. 지난달 5년 4개월 만의 미국 출장을 통해 신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투자 확정을 매듭짓는가 하면 ‘뉴 삼성’ 혁신 플랜도 속속 내놓고 있다. 한국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삼성의 글로벌 경영에 장애요인이 되는 족쇄를 굳이 채워놓아야 하는지 의문이다.
문 대통령은 어제 “이번 사면이 생각의 차이나 찬반을 넘어 통합과 화합, 새 시대 개막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국민통합과 미래를 사면의 명분으로 내세운 것이다. 문 대통령도 고뇌의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지지층의 반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사정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그럴수록 ‘선별 사면’보다는 더 과감한 결단과 설득이 필요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2년 가까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국가 에너지를 한데 모을 수 있는 기회를 흘려보낸 것 같아 안타깝다. 이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에 대한 ‘원포인트 사면’을 추가로 적극 검토하길 바란다.
대선을 75일 앞둔 시점이다. 박 전 대통령 사면이 어떤 정치적 파장을 몰고 올지 예측하긴 쉽지 않지만, 분명한 건 국민통합과 국가 미래 차원에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명 후보는 문 대통령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박 전 대통령의 진심 어린 사죄가 필요하다”고 했다. 윤석열 후보는 “늦었지만 환영한다”고 밝혔다. 내부적으론 여야 모두 달가워하지 않는 기류도 있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 사면을 정치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라도 추후 박 전 대통령을 다시 정치판에 끌어들이고 대선에 활용하려는 어떤 시도도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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