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평인]‘세기의 양심’ 투투 주교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28일 03시 00분


전기차 테슬라, 스페이스X를 만든 일론 머스크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이다. 18세가 된 머스크가 인종차별이 만연한 사회에 환멸을 느끼고 외가 쪽 고향인 캐나다 국적을 취득해 떠난 다음 해인 1990년 넬슨 만델라가 백인인 빌렘 데클레르크 대통령에 의해 석방됐다. 만델라와 함께 악명 높은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철폐를 이끈 단짝이 남아공 성공회의 데즈먼드 투투 주교다.

▷만델라는 1994년 총선을 통해 집권한 뒤 투투 주교에게 ‘진실과 화해 위원회(TRC)’ 위원장을 맡겼다. 투투 주교는 응징적 정의(punitive justice)가 아니라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의 정신으로 TRC를 이끌었다. 그의 원칙은 첫째 인권침해를 저지른 가해자들의 자백, 둘째 그들의 기소를 면제하는 용서, 셋째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이었다. 자백-용서-배상의 프로세스는 이후 국가적 인권침해와 그 극복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됐다.

▷TRC는 친(親)아파르트헤이트 측의 폭력만이 아니라 반(反)아파르트헤이트 측의 폭력도 조사했다. 만델라 지지 세력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행한 고문 등 각종 인권침해 사례도 드러나 ANC의 이미지에 흠이 갔다. ANC가 TRC 보고서에서 자신들의 가해 기록을 삭제하려 하자 투투 주교는 분노했다. 그는 ANC에 대해 ‘어제의 피압제자가 쉽게 오늘의 압제자가 될 수 있다’고 일갈했다. 실제 남아공 정치는 만델라 대통령 퇴임 이후 타보 음베키와 제이컵 주마 대통령을 거치면서 표류했다. 이들의 권력남용 행위가 비일비재했다. 투투 주교는 ANC의 비판자로 돌아섰다. 그는 ‘세기의 양심’으로 불렸다.

▷투투 주교 생애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TRC에서 가해자의 자백을 듣다가 책상 아래로 머리를 파묻고 흐느끼던 모습이다. 흥이 나면 어디서나 자연스럽게 춤을 추는 모습은 백인 성직자들에게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는 백인 진보주의자들이 보기에는 너무 과격했고 흑인 진보주의자들이 보기에는 너무 온건했다. 공산주의에는 늘 반대했다. 위엄과 흥을 동시에 지닌 지혜로운 지도자가 있었기에 남아공은 아파르트헤이트로부터의 전환기를 순조롭게 넘어설 수 있었다.

▷만델라는 2013년 세상을 떠났다. 지난달에는 아파르트헤이트 철폐에 기여한 공로로 만델라와 함께 노벨 평화상을 받았던 마지막 백인 대통령 데클레르크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이달 26일 투투 주교가 선종했다.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이후 ANC의 장기 집권을 어떻게 종식시킬 것인가 하는 새로운 과제가 남아 있는 가운데 남아공의 한 시대가 마감됐다.

#세기의 양심#투투#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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