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연-지연-직연 사라지지만, MZ세대도 사람이 고프다 [광화문에서/김창덕]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28일 03시 00분


김창덕 산업1부 차장
김창덕 산업1부 차장
북클럽 서비스가 있다. 같은 책을 읽은 뒤 그 내용에 대해 토론한다는 간단한 콘셉트다. 책을 읽었다는 증거(과제)를 제출하지 않으면 돈을 냈더라도 모임에 초대받지 못한다. 책 한 권을 읽는다는 게 참 쉽지 않은데, 그 어려운 걸 해내지 않으면 ‘본전’도 못 찾는다는 거다. 이런 상품을 살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2015년 9월 세상에 나온 트레바리는 그런 의문을 단번에 불식시켰다. 설립 4년 만인 2019년 4개월짜리 단일 시즌 모임이 350개를 넘었고, 누적 참가자는 2만5000명에 이르렀다. 고객은 주로 2030 직장인들. 수십억 원대 투자도 받으면서 이른바 잘나가는 스타트업으로 소개됐다. 트레바리의 성공 키워드는 ‘책 읽기’가 아닌 ‘사람’이다. 실제 2019년 동아비즈니스리뷰(DBR)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읽기 클럽을 개설했을 때 참여자들은 아티클 자체보다 누구와 어떤 경험을 공유하느냐가 더 관심사였다.

많은 기업이 그러했듯 트레바리도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한 지난해 초 큰 위기를 맞았다. 단순한 악재 이상이었다. 사람들이 만나야 돈을 버는 비즈니스모델(BM) 근간이 통째 흔들리는 상황이었다. 윤수영 트레바리 대표는 “망할 뻔했다”는 다소 과격한 단어로 당시를 기억했다. 트레바리는 지난해 4월 온라인 전용 클럽을 만들어 돌파구를 찾으려 했다. 어느 정도 매출을 회복시켰지만 애초부터 오프라인만큼의 파괴력을 기대하긴 힘들었다. 결국 평생교육시설 인가를 받은 후 올 10월부터 오프라인 모임을 재개했다.

윤 대표는 “참가자 본인이 얻고자 하는 메시지나 지식 콘텐츠가 명료하면 온라인 모임으로도 충분하다”면서 “다만 대다수 고객은 취향이나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들과 만나 직접 교류하는 데서 큰 가치를 찾는 것 같다”고 했다. MZ세대 사이에서 학연, 지연, 직연(職緣·직장 인연)과 같은 전통적 커뮤니티는 이미 힘을 잃고 있다. 그렇다고 사람들과 교류하려는 욕망까지 없어진 게 아니라는 걸 트레바리는 보여준다.

한 대기업이 핵심 인재 대상으로 마련한 독서토론 클럽의 콘텐츠 큐레이터로 참여한 적이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 최고 단계 시기와 맞물린 A클럽은 100% 온라인으로, 다소 완화된 시점에 열린 B클럽은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반씩 섞어 진행했다. 오프라인에서 먼저 만난 B클럽 참가자들은 참여도는 물론 대화의 밀도도 높았다. 나중에서야 B클럽 진행 방식을 전해 들은 A클럽 참가자들이 많은 아쉬움을 표한 건 물론이다. 오프라인 모임의 위력을 재차 확인한 경험이었다.

최근 여러 대기업 인사 부서에서는 그룹 계열사 핵심 인재들 간 네트워킹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 간의 네트워크가 회사와 회사 간 협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다. 문제는 역시 언택트 시대에 참여자들의 친밀도를 어떻게 높이느냐다.

온라인 화상회의처럼 코로나19 덕에 급격히 성장한 산업이 몇몇 있었다. 재택근무가 늘어나고 온라인이 일상화된 요즘, 다시 오프라인의 가치가 부각되는 상황이다. 어떤 스타트업이 오프라인의 가치를 ‘안전하게’ 활용한 새로운 사업 모델을 내놓을지 꽤나 기대가 된다.

#mz세대#사람#학연#지연#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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