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말 은퇴 앞둔 ‘한국계 첫 백악관 경호 책임자’ 데이비드 조
카터부터 7명 前現대통령 경호… 월가 보안 담당자 이직 예정
“힘으론 서양 친구들 못 이겨… 유연하고 창의적이려 노력
재임중 6차례 북한 다녀와… 많이 달라진다는 느낌 받아”
《1월 20일 제46대 미국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는 미국 워싱턴DC 국회의사당. 숫자 ‘46’이 선명한 번호판을 단 대통령 전용 리무진 ‘비스트(Beast)’가 의사당 앞에 도착하자 거구의 백인 경호원들 사이로 한 동양인 남성이 두꺼운 방탄유리가 장착된 뒷문을 열었다.
거구의 백악관 경호원들을 이끌며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그림자 경호를 펼친 이 동양인 남성의 이름은 데이비드 조(51). 대통령경호실(PPD)을 이끄는 책임 특수요원(SAIC)으로, 1789년 조지 워싱턴이 미국의 초대 대통령에 취임한 지 232년 만에 발탁된 첫 동양인이다. 백악관 비밀경호국(SS) 소속 경호원으로 지미 카터 전 대통령부터 7명의 전현직 대통령을 지켜온 조 특수요원은 이달 말 비밀 경호요원 은퇴를 앞두고 17일(현지 시간)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그는 “나는 비밀경호국에서 한국계는 물론 아시아계로 첫 대통령경호실 부책임 특수요원(DSAIC)을 거쳐 책임 특수요원을 하고 있다”며 “한국 태생이라는 것에 부끄럽지 않도록 늘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비밀경호국 요원은 어떻게 됐나.
“부모님은 변호사나 의사와 같은 전문직을 갖길 원했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군인이나 경찰, 비밀요원이 되고 싶었다. 특히 운동을 좋아해서 어려서 태권도 3단을 땄고 고등학교 때까지 10년간 유도를 했다. 일리노이대에 전체 장학금을 받아 입학하고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미국 대표팀 후보 선수로 발탁됐지만 전방십자인대(ACL)가 끊어져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다. 그래도 재활에 성공해 미국 중서부 챔피언과 미국대학체육협회(NCAA) 올아메리칸팀에 뽑히기도 했다. 그런 경력이 도움이 됐다.”
미 국토안보부(DHS) 산하인 비밀경호국은 산하에 대통령 경호실 등을 두고 미국 대통령 및 부통령과 그들의 가족 등 중요 인물을 경호하는 역할 외에도 미국 금융시스템을 위협하는 사이버 범죄와 위조지폐 등 금융범죄를 수사하는 권한을 가진 사법집행기관. 매년 군인과 경찰 출신은 물론 변호사와 엔지니어, 공학자 등 지원자가 몰려 2011년에는 1만5600명이 지원해 1% 미만이 합격할 정도로 선발 절차가 까다롭다.
―대통령 경호업무를 맡은 것은 얼마나 됐나.
“비밀경호요원으로 임용된 것이 1995년 9월이다. 26년 넘는 비밀경호원 경력 중 15년간 대통령 경호업무를 맡았다. 비밀경호국은 수사 업무도 맡고 있지만 VIP 경호가 비밀경호국의 가장 중요한 책임 중 하나다. 나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기보다 세상을 위해 가장 중요한 누군가를 지켜주고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
―한국계 미국인이라 겪은 어려움은 없었나.
“처음 비밀경호국에 들어왔을 때 한국계 미국인은 단 4명뿐이었다. 나는 운 좋게 훈련을 마치자마자 1996년 4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제주도를 방문할 때 임시로 대통령 경호요원으로 배치됐고 그때부터 내가 VIP 경호요원이 되고 싶다는 걸 알게 됐다. 하지만 어려움이 많았다. 같이 훈련을 받은 동료들은 대부분 미식축구나 야구선수 출신이라 나는 늘 작은 편이었다. 나는 그들처럼 400파운드(약 180kg)를 들어올릴 순 없었다. 그래서 그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더 유연하고 창의적이어야 했다. 천연자원이 없는데도 혁신과 독창성으로 세계 1위 반도체 국가가 된 한국의 경제성장과 같은 원리가 아닐까 싶다.”
―바이든 대통령 경호를 맡았을 때, 대통령 취임식에 “두 명의 ‘조’가 있었다”고 할 만큼 미국 미디어에 집중 조명됐는데….
“인터넷에선 ‘중국 간첩(chinese handler)’이라고 악의적인 얘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통령 취임식은 새로운 대통령과 그의 취임사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나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를 통해 영감(inspiration)을 받았다고 한 사람들도 있었고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무언가를 대표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돼 뿌듯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을 경호하면서 위험한 순간은 없었나.
“대통령이나 VIP를 경호할 때는 항상 우려되는 순간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서 최대한 안전한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다. 내가 경호할 때만큼은 대통령에게 가급적 편안한 순간을 누리게 해주고 싶었다.”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질문에 조 특수요원과 인터뷰 자리에 함께 온 또 다른 비밀 경호요원은 “VIP와의 관계는 보안사항”이라고 선을 그었다. 세계 모든 국가의 이목이 집중된 미국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보는 비밀경호원의 숙명이다. 그만큼 비밀경호원의 세계는 대부분 베일에 감춰져 있다.
―2018, 2019년 북-미 정상회담 경호를 담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싱가포르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모두 장소와 일정 경호를 지휘하는 책임자였다. 북-미 정상회담에선 미국과 북한 외에 한국까지 3개국이 관련돼 있었다. 무엇보다도 어느 한쪽이 당황하거나 부끄럽지 않게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몇 차례 긴장된 순간이 오가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일정들이 매우 차분한 분위기에서 매끄럽게 진행됐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예상치 못했던 순간은 없었나.
“사실 싱가포르 회담 당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처음 악수하던 순간은 즉흥적이고 자연스럽게 이뤄진 것이다. 그래도 아무도 다치지 않은 것은 다행이다.”
―북한 경호 책임자들과 문화 차이는….
“북한 경호요원들은 매우 전문적이었다. VIP 경호는 정치와는 무관하게 어느 곳에서나 같은 미션이 있다. 북한 러시아 프랑스 캐나다 한국 미국 모두 다 같다. 북한 역시 매우 전문적이고 작은 차이들이 있을 때에도 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북한은 몇 번이나 다녀왔나.
“지금까지 총 6차례 북한을 다녀왔다. 처음 북한을 방문한 것은 클린턴 전 대통령이 2009년 미국 기자 2명의 북한 억류를 해결하기 위해 방북했을 때였다. 2010년 8월 억류됐던 아이잘론 말리 곰즈 씨 송환 등 카터 전 대통령의 두 차례 방북 때도 경호를 맡았다. 그리고 두 차례 북-미 정상회담과 2019년 6월 트럼프 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예정에 없던 판문점 회동 때도 동행했다. 북한을 처음 방문했을 땐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을 만큼 놀랐다. 그래도 마지막 북한을 방문했을 때는 현대화가 진행돼 처음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26년간 비밀경호요원을 지낸 그는 이달 말 비밀경호국을 떠난다. 390억 달러(약 46조 원)의 자산을 운용하는 헤지펀드 시타델의 보안 부담당자로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것이다.
―왜 대통령 경호 책임에서 물러나기로 결심했나.
“비밀경호요원으로 정상에 섰을 때 물러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26년간 뒷바라지 해준 가족들과도 더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리고 사이버 위협에 대응하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려면 지금이 좋은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다른 한국인 이민자 가정처럼 부모님은 나를 위해 많은 희생을 감수했다. 그런 부모님을 보며 나는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부모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한국과 미국에 있는 한국인 젊은이들에게 부모님이 희생해 만든 이 자리에서 당신이 정말 열심히 노력한다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데이비드 조 미국 비밀경호국 대통령경호실(PPD) 책임 특수요원
△1970년 출생 △2015년 3월∼2017년 5월 대통령경호실 책임 특수요원 보좌(ASAIC) △2017년 6월∼2021년 1월 부책임 특수요원(DSAIC) △2021년 1∼12월 책임 특수요원(SA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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