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상을 떠난 영국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의 작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물은 아마 프랑스 파리에 있는 ‘퐁피두 센터’일 것이다. 역사적인 도시의 전통과 맥락을 지키는 데 최선을 다하는 파리의 중심에 대담하게도 배관과 뼈대를 노출하고 알록달록한 원색을 생생하게 드러내는 건물을 지었으니, 건축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사건이었고 선언이었다. 그리고 그 선언은 지금도 생생하다. 미래를 이야기하자는 것이고 건축의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대담한 제안과도 같았다. 전통을 잘 지키면서도 그렇게 미래를 담보하는 새로움을 수용하는 프랑스의 문화적인 자신감이 부럽기도 했다. 변화는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게 새로움을 추구한 몇 명의 건축가들 중 로저스와 더불어 그와 이념을 공유하던 노먼 포스터가 있다.
포스터는 영국 맨체스터 외곽 지역에서 가난한 페인트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운 환경에서 맨체스터대를 졸업하고 장학금을 받아 미국의 예일대로 유학을 하러 갔다가 그곳에서 로저스를 만나게 된다. 그들은 졸업 후 1964년에 ‘팀4’라는 설계사무소를 열고 동업을 시작한다. 그 당시 런던 외곽에 자연친화적이며 현대적인 재료를 활용한 ‘재프 하우스(jaffe house)’라는 집 등을 설계하며 ‘새로운 건축’에 대한 생각을 가다듬게 된다.
지금이야 그 위상이 많이 약해졌지만, 영국은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릴 정도로 강력한 제국이었다. 그들은 한때 바다를 제패하고 대륙에 식민지를 경영했고 산업혁명을 이뤄내며 근대를 열었다. 지금까지도 문화적인 역량으로 전 세계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또한 혁신을 주도한다. 건축 분야에서도 영국은 전통을 중시하면서도 AA스쿨(영국 건축협회 건축학교)을 중심으로 혁신적인 건축을 주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로저스와 포스터는 그 중심에서 활동했으며 현대 건축에서 아주 중요한 자리에 있다.
건축은 형태와 표정을 드러내는 외부가 있고 사람을 담는 공간인 내부가 있다. 외부는 내부 공간을 반영하기는 하지만 다른 차원이다.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아름다운 외장으로 감싸고 멋진 비례로 다듬는다. 그런데 외부의 피막으로 감춰야 하는 골격(구조재)이나 내장(각종 설비 라인)을 드러내는 건물들이 있다. 파리의 퐁피두 센터가 그렇고 홍콩에 있는 홍콩상하이은행이 그렇다. 그런 건물은 첨단의 과학기술을 건축에 적용하는 방식이라 ‘하이테크 건축’이라고 부르고 1980∼90년대에 새로운 경향으로 주목받았다.
포스터는 로저스와의 동업을 끝내고 1967년에 부인인 웬디와 ‘포스터 어소시에이츠’라는 설계사무소를 만든다. 그리고 몇 개의 주목할 만한 건물을 만들기는 했지만, 그중 홍콩상하이은행은 본격적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게 해준 중요한 프로젝트였다. 1985년 완공된 시점에서 단일 건물로는 가장 비용이 많이 들어간 건물로도 유명했다.
그 당시까지 고층건물을 설계해 본 적이 없는 그에게 47층이나 되는 이 건물은 무척 어렵고도 중요한 도전이었을 것이다. 거대한 철 구조물이며 외관으로 구조와 설비가 드러나는 획기적인 디자인이었는데, 기본적으로 기존 고층건물의 공간 개념에 커다란 변화를 꾀한다. 보통의 고층건물은 중앙에 엘리베이터와 계단 그리고 중요한 설비의 통로를 겸한 코어(core)를 배치하고 그 주위로 사람들이 근무하거나 사용하는 공간을 둔다. 그런 배치 형식은 기본적으로 코어가 건물의 척추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며 그것은 구조적인 필요에 의한 방법이다.
그러나 홍콩상하이은행은 외곽으로 배치된 코어와 메가 칼럼으로 기둥이 없는 시원한 내부 공간을 만들면서 시작한다. 빠져나간 코어와 메가 칼럼은 건물의 외관이 되며 구조적이며 미래적인 건물의 인상을 만든다. 마치 근대 초기에 활동하던 러시아 구성주의 혹은 미래파 건축의 회화를 보는 것 같다.
그런 건축운동의 주된 관심 사항이 건축의 역동성이었다. 건축이라는 정지된 3차원에 운동성과 생명체와 같은 유기성을 추구했던 것은 현대로 들어서며 대두된 새로운 개념이다. 그러나 무거운 건축이 그런 운동성과 유기적인 변화를 꾀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 느낌은 저층부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1층은 양쪽 끝단에 있는 코어 외에는 텅 비어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2층으로 바로 진입할 수 있는 에스컬레이터만 덩그러니 있다. 건물이 길을 막지 않고 개방되어 외부의 사람들에게도 흐름을 허용하고, 사선으로 놓여 있는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건물로 진입하는 개방성과 운동성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포스터가 추구했던 것은 단지 현대적인 반짝이는 재료와 기계가 드러나는 그런 일차원적인 건축의 표현적인 속성이 아니라, 움직이는 기관과도 같고 살아있는 유기체와도 같은 건축의 역동성이었다.
그는 단지 구조나 형태적 적용뿐만 아니라 태양과 빛과 같은 자연의 요소를 건축으로 받아들이고 소통하게 만드는 장치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실험과 적용을 하고 있다. 최근 진행한 도넛 형태의 ‘애플 파크(Apple Park)’ 역시 그런 관심의 연장선에 있다. 포스터는 건축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일관되게 역동적이며 친환경적인, 이를테면 살아있는 생명체와도 같은 유기적인 건축을 당대의 기술로 풀어내는 혁신적인 건축을 실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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