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전기·가스료 대선 후 인상… 속 보이는 선거용 행정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29일 00시 00분


전기요금 인상 서울의 한 빌라에 가구별 전기 사용량을 보여주는 전기계량기가 설치돼 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정부가 대통령 선거 직후인 내년 4월부터 전기요금은 10.6%, 도시가스 요금은 16.2% 올리기로 했다. 불과 1주일 전에 내년 1분기 전기요금을 동결해놓고 에너지 공기업 적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자 대폭 인상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그러면서 국민들이 요금 인상을 피부로 체감하게 되는 시점은 대선 후로 잡은 것이다. 서민 생활과 직결되는 공공요금 관리조차도 선거 일정에 짜 맞춰서 한다는 비판을 받아 마땅한 일이다.

10여 년 만에 소비자 물가가 최고로 올랐다는 통계가 나온 이달 2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서민 생활물가를 최대한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했다. 17일엔 기재부 1차관이 “서민 물가 측면에서 전기요금 인상은 부담이 굉장히 크다”고 거들었고 정부는 20일 내년 1분기 전기요금을 동결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던 정부는 1주일 만인 그제 갑자기 내년 4월 이후 전기요금, 도시가스 요금을 인상하겠다고 결정했다. 정부는 “에너지 수요가 많은 동절기에 국민의 어려움이 커지지 않도록 물가인상 압박이 완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2분기 이후로 조정 시기를 분산한 것”이라고 하지만 옹색한 논리다. 원료비가 올라 한전 등 에너지공기업의 적자가 쌓이면 결국에는 정부, 최종적으로는 납세자인 국민의 부담이 된다. 인상 시기를 늦추면 청구서가 한꺼번에 돌아올 뿐이다.

결국 선거 전에 전기요금 등을 올릴 경우 여론 악화로 여당 대선 후보가 손해를 볼 것이란 정치적 판단에 따라 3월까진 요금을 동결하고, 선거를 치른 후 요금을 올리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정부가 여당 대선 후보의 주문에 따라 종합부동산세를 올해 기준에 맞춰 내년 한 해만 동결하려고 하는 것과 전혀 다를 바 없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내년도 경제정책 방향에서 한겨울인 1월에 예산을 쏟아부어 관제 일자리 57만 개를 만들고, 1분기 소상공인의 고용보험, 산재보험료 등의 납부를 유예해 주기로 한 것도 마찬가지다.

대선 일정에 맞춘 ‘꼼수’ 행정은 차기 정부와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사실상 국민을 속이는 일인 것이다. 이런 식으로 불신이 쌓이면 정부가 선의로 하려는 정책들마저 불필요한 정치적 갈등에 휩싸일 가능성이 크고 추진에 탄력을 받기 어렵게 된다. 결국 문재인 정부에도 부메랑이 될 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전기요금#도시가스 요금#대선 후 인상#선거용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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