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착하고 똘똘한 초등학교 3학년 남자아이였다. 이 아이는 학교에서 친구의 놀림에 쉽게 흥분해서 자주 싸움을 하곤 했다. 한번은 학교 생태학습장에서 같은 반 친구가 벌레 이름을 물었다. 아이는 곤충 박사라고 해도 좋을 만큼 모르는 곤충 이름이 없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이 아이가 대답도 하기 전에, “너 이거 모르지? 모르지? 모르지? 너는 이거 모를 거야∼” 하면서 놀렸다. 아이는 화가 나서 “알거든!” 했단다. 친구는 다시 “에이∼ 모르면서 모르면서 모르면서 뭔지 모르면서∼” 하면서 더 심하게 깐족거렸다. 아이는 “안다고! 안다니까!” 소리를 지르다가 그 친구랑 싸움을 하게 되었고, 결국 교사에게 혼이 났다.
나를 만난 아이는 무척 억울하고 분해했다. 그 아이가 먼저 놀렸다는 것이다. 아이에게 물었다. “그 친구가 너한테만 그러니?” 아이는 다른 애들한테도 그런다고 대답했다. 다시 물었다. “그 친구는 현재 좀 그런 상태네. 그 친구가 오늘, 너를 꼭 놀려주어야겠다고 작정을 하고 학교에 왔을까?” 아이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잠깐 생각에 잠겼다. “그냥 상황 상황마다 주변에 있는 아이들을 놀리는 거야. 그럴 때 네가 많이 안다는 것, 그 결백을 꼭 증명하려고 들 필요는 없어. 증명하려고 들면, 그 친구의 놀림을 네가 덥석 무는 거야. 함정에 빠지는 거지. 네가 덥석 물면 그 친구는 ‘아하∼’ 하면서 더 놀리거든.” 아이는 뭔가 깨달은 듯 “아∼ 함정요?”라고 했다. “그래, 함정. 그 친구가 ‘모르지, 모르지’ 하면 그냥 피식 웃고 가면 돼. 계속 그러면 한 번은 강하게 ‘그만 해라’라는 말도 하긴 해야지. 그런 상황을 억지로 참기만 해서는 안 되니까. 하지만 그 말을 해도 그런 친구들은 계속 그럴 거야. 그럴 때는 그냥 속으로 ‘아, 너는 현재 그 상황이구나’ 생각하면 돼. 밖으로 말하지는 마. 그렇게 지나가도 네가 지는 게 아니야. 증명하지 않아도 네가 알고 있는 것은 알고 있는 거야. 모르는 것이 되지는 않아”라고 아이에게 가르쳐주었다.
나의 선함과 결백을 증명하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들 중에는 친구들이 놀릴 때나 놀리면서 없는 말을 할 때, 그 부분에서 딱 걸리는 경우가 있다. 보통 모범적이고 똑똑한 아이들, 선량한 아이들이 많이 그런다. 그런 상황에서 부모가 아이에게 조언한답시고 “네가 그렇게 별것도 아닌 것으로 흥분하니까 선생님한테 혼나지?”라고 하면 안 된다. 아이 입장에서는 그 부분이 별것 아닌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부모의 말은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너 결백하잖아. 그걸 뭐 걔한테 꼭 증명할 것 있니? 꼭 밝힐 것 있니? 원래 결백하면 결백한 거야.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결백은 그냥 결백이야”라고 말해주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 아이는 “걔가 자꾸 아니라고 하잖아요?”라고 따질 수 있다. 그럴 때는 “걔는 현재 그 상황인 거고, 걔 상태가 그런 거야. 엄마가 알아주면 되는 거잖아. 아마 다른 친구들도 대충은 다 알고 있을걸”이라고 말해준다. 때로는, 꼭 밝혀야 하는 결백도 있다. 그러나 부모자녀 또는 가까운 사람과 일상을 살아갈 때, 결백을 지나치게 증명할 필요가 없고, 상대에게 자신이 결백하다는 것을 지나치게 설득시킬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주는 것도 필요하다.
누군가 나를 오해하면 미칠 듯 답답해진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진다. 그런데 그 결백은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 어른들도 인간관계에서 지나치게 나의 선함, 결백을 밝히려고 들면 오히려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상대가 오해한 것 같은데 그리 큰 일이 아니라면 “잘못 알고 계신 것 같아요. 정말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말하고 그냥 물 흐르듯 흘러가도 된다. 아닌 것은 그냥 아닌 거다. 물이 흘러가듯이 살아도 여전히 나를 오해하는 사람은 있다. 그 사람이 오해를 안 하도록, 내가 애써 지나치게 결백을 증명할 필요는 없다. 결백은 증명하든 안 하든 결백인 거다.
우리는 가끔 아이 앞에서도 나의 결백을 증명하려고 목에 핏대를 세우기도 한다. 아이에게 부모의 옳음을, 부모의 선한 의도를 지나치게 증명하려고 든다. 부모의 말은 대부분 옳다. 부모의 마음도 대부분 선한 의도이다.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너무 길게 잔소리를 하거나 화를 낼 필요는 없다. 부모의 옳음을, 선한 의도를 증명하려고 아이를 강압적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 아이가 그 말을 한 번에 따르지 않아도 그 말이 옳은 것은 변하지 않는다. 그 옳은 말을 아이가 바로 듣지 않아도, 한 자리에서는 좋게 한 번 정도만 했으면 한다. 그 말에 아이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그렇군요”라고 하지 않아도, 옳은 것이 옳은 것이다. 그른 것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