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자 동아일보 1면에 세상을 떠난 부모의 빚을 떠안게 된 박재민(가명·17) 군의 안타까운 사연이 실렸다. 재민 군은 매달 기초생활 생계급여 55만 원을 받지만 부모가 남긴 부채상환 원리금으로 40여만 원이 빠져나갔다. 1일부터 부모가 사망했을 경우 지방자치단체와 대한법률구조공단이 미성년자 유족의 빚 상속 포기를 돕는 제도가 시행됐다. 구조공단이 나선 덕분에 재민 군은 부모 빚을 물려받지 않게 됐다.
현재 미성년자가 부모 빚 상속을 거부할 수 있는 제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민법상 부모가 모두 사망했을 경우 친척 등이 친권자로 지정되면 미성년자를 대리해 채무상속 포기 절차를 밟으면 된다. 그러나 미성년자가 구체적인 준비요건이 명시된 복잡한 법적 절차를 이해하기 어려워 피해 사례가 속출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동아일보는 5월 ‘빚더미 물려받은 아이들’ 연속 기획을 통해 이들의 호소를 보도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 같은 문제점을 개선하도록 지시한 지 45일 만에 정부 차원의 지원제도가 시행된 것이다.
그러나 정부 조치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볼 수 없다. 무엇보다 미성년자와 주변 친척들이 자발적으로 구제 절차를 밟는 게 쉽지 않다. 지자체와 구조공단이 나선다고 해도 미성년자의 어려운 처지를 꼼꼼히 챙기기 어려운 시스템의 한계도 있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관련법을 정비해야 하는 이유다.
프랑스, 독일 등에서는 미성년자가 재산보다 많은 채무를 물려받지 않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4월 이런 해외 입법 사례를 바탕으로 미성년 상속인 보호 입법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냈다.
지금 국회엔 이 같은 내용의 민법개정안이 4건이나 발의된 상태다. 그러나 국회 차원의 논의는 사실상 물 건너간 분위기다. 여야 모두 대선을 앞두고 눈길을 끌기 어려운 법안에 주목하지 않는 탓이다. 아이들의 아픔을 공감할 줄 모르는 몰인정한 국회다. 여야 대선 후보가 직접 법안을 챙겨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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