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10년, 내리막길은 가파르다[오늘과 내일/이철희]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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核만 붙든 젊은 수령 앞에 놓인 암울한 현실
비핵화-개방 유도하는 정교한 관리외교 필요

이철희 논설위원
이철희 논설위원
북한 정보를 전문으로 다루는 미국의 인터넷매체 NK뉴스가 최근 김정은 집권 10년을 맞아 전 세계 북한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6차례에 걸쳐 게재했다. 그 대표성이나 객관성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전직 외교관이나 연구자, 활동가 등 오랫동안 북한을 관찰해온 각국 전문가 82명의 의견을 모은 결과인 만큼 북한의 현주소를 살펴보는 데는 참고자료가 될 수 있을 듯하다. 그 내용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10년 전 ‘과연 몇 주, 몇 달을 버틸까’ 관심의 대상이던 애송이 지도자가 지금 누구도 넘보기 어려운 권력을 틀어쥐고 있다. 그걸 가능케 했던 것은 무엇일까. 전문가 다수가 김정은이 2018년 중국과의 전략적 유대를 복원한 점을 꼽았다. 반면 최대 실책은? 2019년 하노이 북-미 회담 결렬, 즉 ‘플랜B’를 준비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10년 뒤 북한은 어떨까? 식량난 같은 위기 속에서도 제재 완화를 얻어내든 중국에 기대서든 간신히 버티며 핵을 붙들고 있을 것이라고 대다수가 내다봤다.

미국의 북한 다루기는 어땠을까. 지난 10년 최고의 정책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 외교였다고 다수가 평가했다. 반면 최악의 선택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가 꼽혔다. 그렇다면 앞으로 미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 비핵화는 가망 없다고 보고 북-미 수교와 평화협정 체결, 지속적 관여 정책을 추진할 때라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했다. 핵 포기 압박과 제재 강화를 주장한 응답자의 두 배가 넘었다.

어찌 보면 뻔할 수도, 보기에 따라선 의외일 수도 있는 내용이다. 현재의 시점에서 10년을 되짚어 보고 향후를 내다보는 것이니 그 나름 북한을 잘 안다는 전문가라 해도 지금 이 시간의 무게, 꽁꽁 가려진 북한 정보의 한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더욱이 김정은은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나라 전체를 2년 가까이 봉인해 놓았다. 그럼에도 아직껏 내부의 동요 조짐은 노출되지 않고 있다. 그러니 김정은의 권력 공고화가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대목은 전문가 다수가 북한이 비핵화를 거부하는 상황에서도 미국을 향해 북한을 포용하라는 의견을 내놓았다는 점이다. 북한 위협을 축소하고 관리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라는 주문이다. 물론 미국 행정부는 결코 내켜 하지 않겠지만, 김정은의 완강한 버티기와 대외 여론전이 최소한 북한 관찰자들에겐 깊은 인상을 심어준 셈이다. 하긴 문재인 정부의 종전선언 추진도 북한을 좀 안다는 이들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을 터다.

김정은은 오늘로 북한군 최고사령관 자리에 등극한 지 10년을 맞는다. 며칠째 노동당 전원회의를 주재하며 ‘승리의 해’를 결산한다지만 뾰족한 현실 타개 방안이 나올 리 없다. 김정은은 또다시 허황된 자존감을 앞세운 미사여구를 쏟아낼 것이고, 대외노선에서도 대화와 대결이 뒤섞인 기회주의적 메시지를 내놓을 것이다. 당분간은 밀무역과 사이버 해킹으로 연명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무리 모진 권력자라도 배곯는 주민의 원성을 이길 수는 없다.

김정은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다. 진흙구덩이 참호에 처박힌 채 무한정 버티기는 어렵다. 다만 당장 나오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우선 코로나 공포부터 떨쳐내야 한다. 한국 대선도 지켜봐야 한다. 이런 북한에 한미 양국도 조바심 낼 필요가 없다. 섣불리 나서기보다는 북한의 도발 유혹을 제어하며 비핵화로 유도하는 정교한 관리전략이 필요한 때다.

#김정은#북한#내리막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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