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50세를 가리켜 지천명이라 부른다. 하늘의 명을 알아 세상 이치를 깨닫게 되는 나이란 의미다. 메리 커샛도 쉰 살이 되자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그 덕에 용기 내어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새로운 주제의 그림에 도전할 수 있었다. 과연 그 도전은 성공했을까?
커샛은 프랑스 인상주의 전시에 참여했던 유일한 미국 여성 화가다. 20대에 살롱전에 입상한 실력파였지만 멘토이자 동료 화가였던 에드가르 드가의 초대로 인상주의 그룹의 멤버가 되었다. 19세기 여성은 정규 미술 교육에서 배제되었기에,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역사화나 종교화는 남성들만의 전유물이었다. 당시 대부분의 여성 화가들처럼 커샛 역시 모성애나 여성의 소소한 일상을 다룬 그림을 주로 그렸다.
하지만 50세 때 그린 ‘현대 여성’은 완전히 다르다. 1893년 시카고에서 열린 세계 컬럼비아 박람회를 기념하는 여성빌딩 내부 벽화로, 가로 18m가 넘는 대작이다. 총 3개의 패널로 구성돼 있는데, 왼쪽에는 명성을 추구하는 여성들이, 오른쪽에는 음악, 무용 등 예술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그려져 있다. 가운데 패널에는 에덴동산을 연상시키는 과수원에서 능숙하게 과일을 따는 여성들이 묘사돼 있다. 사다리 위에 올라간 여성이 어린 여자아이에게 자신이 딴 열매를 건네고 있다. 이는 지식과 과학의 결실을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여성을 상징한다. 그림 속 여성들은 독립적인 인간으로 남자를 파멸시키는 팜파탈도, 뱀의 유혹에 빠져 남편을 타락시키는 죄인도 아니다. 여자들도 지식을 쌓아 과학 발전에 기여하고, 예술을 창조하고 명성을 추구하는 인간이란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벽화에 대한 반응은 어땠을까? 여자도 남자만큼 이룰 수 있다는 그녀의 깨달음은 당시 사회가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다. 가장 심하게 비판한 사람은 멘토였던 드가였다. 박람회 직후 벽화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어딘가에 보관 중 파괴되었다고 추측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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