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김윤종]마크롱 대통령이 ‘출마 선언’ 미루는 이유는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31일 03시 00분


EU 외교 위해 대통령 이미지 유지 전략
내년 대선, 후보들 미래비전 위주 경쟁 절실

김윤종 파리 특파원
김윤종 파리 특파원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크리스마스 전에 출마 선언을 해야 합니까?’

일간 르피가로가 성탄절 전에 실시한 설문조사다. 프랑스는 한국과 비슷한 시기인 내년 4월 대선이 열린다. 5년 중임제인 탓에 현직 대통령도 재선을 원하면 ‘공식 출마 선언’을 해야 한다. 하지만 선거를 4개월 앞두고도 마크롱이 입장을 밝히지 않자 설문조사까지 실시된 것이다. ‘해야 한다’는 응답(63.1%)이 ‘안 해도 된다’(36.9%)보다 높았다.

외견상으로는 마크롱이 하루빨리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어야 할 시기다. 여론조사기관 엘라브의 대선 지지율 조사(8일)에서 마크롱은 1차 투표에서는 23%를 얻어 1위를 기록했지만 양자 대결인 2차 투표에서는 48%를 얻어 우파 여성 정치인 발레리 페크레스 일드프랑스 주지사(52%)에게 뒤졌다. 프랑스 대선은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1, 2위 득표자가 2차 결선 투표를 치른다.

그럼에도 마크롱은 내년 2월에야 출마 선언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현지의 예측이다. 대통령 위치를 이용할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출마 선언을 늦추겠다는 전략을 세웠다는 것이다. 이달 15일 공영방송 TF1에서 방영된 대통령 인터뷰가 그 예다. 이날 인터뷰는 일자리, 연금 개혁 등 5년 임기의 회고와 남은 개혁과제를 제시하는 선거 캠페인에 가까웠고, 야당 후보들은 ‘마크롱이 출마 선언은 하지 않은 채 꼼수를 부린다’며 방송규제기관에 조사를 요청했다.

마크롱이 출마 선언을 늦추는 또 다른 이유로 내년 1월부터 유럽연합(EU) 의장국을 맡는 ‘프랑스의 외교 상황’이 꼽히고 있다. 이달 8일 퇴임한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로 인해 EU 리더십에 공백이 생긴 상황에서 미군에 의존하지 않는 유럽군 창설, 유럽식 경제 성장 모델 구축 등 프랑스가 선두에 나서 EU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 마크롱의 목표다. 마크롱 대통령이 ‘대선 후보’보다는 ‘대통령’ 이미지 유지를 우선시하는 이유라고 현지 언론들은 보도했다.

이 때문인지 “마크롱의 꼼수는 개인의 권력욕에 그치지 않고 ‘정책 지속성’과 ‘유럽의 미래’라는 큰 그림을 전제로 이뤄지고 있다”고 변호하는 여론도 적지 않다. 마크롱도 최근 “임기의 마지막 15분까지 일하겠다”며 화답했다.

유력 후보인 ‘프랑스의 트럼프’ 에리크 제무르 역시 ‘이민자를 쫓아내겠다’는 등 반(反)이민 발언을 쏟아내고 있지만, 옳든 그르든 프랑스가 해결해야 할 이민 문제와 관련 정책을 토대로 지지율을 확보하고 있다. 또 다른 후보인 극우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대표도 고속도로 국유화 등 서민용 좌파 정책을 차용하는 식으로 외연을 넓혔다.

물론 프랑스 대선이라고 ‘정책과 비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유부남인 제무르는 자신의 20대 여성 비서관과의 불륜이 폭로됐다. 마크롱 대통령의 부인인 브리지트 마크롱 여사가 성전환 수술을 한 남성이라는 가짜뉴스도 확산됐다. 이런 이슈들은 스쳐 지나가거나 주요 언론에서는 중점적으로 다루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 대선은 어떨까? 후보자들의 아내, 자녀가 집중적으로 부각되는 반면 집권 후 시행할 정책, 미래에 위한 ‘큰 그림’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해외에서 한발 떨어진 채 이번 대선을 들여다보고 있는 기자의 착각이길 바랄 뿐이다. 새해에는 미래의 청사진 중심으로 대선 레이스가 펼쳐지길 소망해본다.

#마크롱 대통령#출마 선언#내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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