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강원도 영월에 있는 민박집. 산꼭대기에 있는 곳으로 정원가들 사이에서는 풍성하고 아름다운 꽃밭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시골 개 ‘구월이’와 ‘배추’가 있고 앞쪽으로는 텃밭이, 뒤쪽으로는 숲과 산이 펼쳐진다. 사장님이 뚝딱뚝딱 음식을 잘하시는 데다 함께 먹는 것을 별일 아니게 생각해 갈 때마다 잘 먹고 잘 쉬고 온다. 이번에도 마찬가지. 총각무와 두부를 넣고 자박하게 끓인 김치지짐이를 시작으로 목살구이, 계란말이, 간식으로 내 주신 군고구마까지 잘도 먹고 왔다. 이곳이 지루하지 않은 이유는 풍경과 시설이 계속 업그레이드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산자락 바로 밑, 널찍한 공터 끝자락에 사우나룸을 오픈했다. 잠시 사장님의 예찬론. “배 꺼질 때쯤 사우나를 하고 나면 너무 시원하고 좋아요. 살도 쭉 빠졌다니까. 가족끼리니까 홀랑 벗고 해도 돼. 뜨거운 공기가 위로 올라가니까 더우면 바닥에 누워요. 그러면 안 더워. 밖으로 나가 잠시 걷다가 들어가도 되고.” 한가득 기대를 안고 들어간 사우나룸은 ‘과연’이었다. 벽난로가 토해내는 열기로 내부는 후끈했고 한 번씩 덧문을 열면 얼음물처럼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때렸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앞산 풍경도 정겨웠다. 난로 위 칸에서 구운 고구마는 30분 만에 꺼내니 포근포근 기가 막히게 잘 익어 있었다. 목이 막히면 귤을 곁들이고, 휴대전화로 좋아하는 노래를 틀고, 나른하게 늘어져 잠시 눈도 붙이며 2시간을 보냈다.
겨울의 민박집은 여름과 비교하면 볼 것이 확연히 적었다. 꽃과 잎이 가득하던 여름의 풍경과 비교돼 처음에는 “어라?” 하며 서운한 마음까지 들었다. 색도 확연히 줄어 갈색이 대부분이었다. 고요했고 잠잠했다. 텅 빈 여운이 풍경 곳곳을 채우고 있었다. 그런 기운과 풍경 속에서 “아 춥다” 하며 종종걸음으로 식당을 오가고 자작나무숲을 오가며 틈틈이 산책을 했다. 만두까지 빚어 먹으며 삼시 세끼도 열심히 챙겼는데 단조로워 행복한 시간이었다. 신기한 변화도 느꼈다. 서울에서 하루하루 경보하듯 바쁘게 살 때는 도무지 책을 들게 되지 않았는데 겨울의 민박집에서는 절로 책을 들게 되고 문장도 차분히 따라갈 수 있었다. 텍스트가 또 하나의 압박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군고구마나 가래떡처럼 그저 편안하게 집어 드는 간식 같았다. 그 변화는 ‘빈 자리’가 준 선물이 아닐까 싶다. 볼 것이 많지 않아 생긴 눈의 빈 자리, 그저 먹고 자고 느끼며 찾아간 마음의 빈 자리. 그건 다른 말로 ‘틈’. 겨울은 짧게나마 그렇게 틈이 나는 시간이니 이 차가운 계절이 한편으로 따뜻하고 감사하게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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