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이 길어지면서 서민경제의 시름이 깊어가고 있다. 소득은 주는데 주거비 공공요금 식품 등 생활물가 전반에 걸친 인플레이션의 먹구름이 밀려드는 중이다. 청년들은 번듯한 정규직 일자리는 고사하고, 최저생계에 필요한 알바 일자리를 구하는 데도 애를 먹는다. 저출산 고령화, 연금재정 고갈, 천문학적인 탈(脫)탄소 비용 등 한국 경제가 풀어야 할 중장기적인 과제도 첩첩이 쌓여가고 있다.
갈수록 격화하는 미중 갈등과 전 세계적인 공급망 위기 속에서 지속성장을 위한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할 리더십이 절실한 시점이다. 하지만 그 중심이 되어야 할 유력 대선 후보와 여야 정치권은 표를 얻는 데만 급급할 뿐 미래 비전과 청사진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는 듯하다. 여기 가서는 이 약속, 저기 가서는 저 약속을 쏟아내기 바쁘다 보니 정책 일관성은 뒤죽박죽이 된 지 오래다. 궁극적으로 민생과 경제에 독(毒)이 되는 포퓰리즘 공약도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진다.
당장 정부 여당부터 선심정책을 총동원하는 모습이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55만 곳에 1월 말 손실보상금 500만 원을 선(先)지급키로 한 게 단적인 예다. 먼저 보상한 뒤 대선 후 손실 여부를 확정해 정산하는 방식이다. 이재명 후보의 주장을 정부가 수용한 것으로 현금 살포 논란을 피할 수 없다. 여당은 2월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을 추진하겠다는 방침도 공식화했다. 올해 본예산이 국회를 통과한 지 한 달도 안 돼 추경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정상이 아니다.
야당도 선심성 돈 풀기 공약을 남발해온 건 매한가지다. 자영업자 지원에 50조, 100조 원을 투입하겠다고 서슴지 않고 말한다. “대선 전에 하자” “대선 이후 하겠다” 등 내부에선 시기도 엇갈린다. 어떻게 재원을 마련할 것인지도 명확치 않다. 현실성이 담보되지도 않은 판돈 키우기에 야당도 가세하면서 나라 곳간이 남아날지 의문이다.
지금 우리 경제는 성장이 더딘 가운데 물가상승률은 높은 ‘슬로플레이션’ 조짐을 보이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5%로 10년 만에 가장 높았다. 반면 올해 성장률은 정부 목표치(3.1%)를 밑돌 것이라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여야의 포퓰리즘 공약을 떠받치느라 재정 지출을 무차별적으로 늘리다간 경제 위기를 자초할 수도 있다.
이제 대선까지는 67일이 남았을 뿐이다. 유력 후보들과 여야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헤쳐 나갈 한국 경제의 비전과 빈부 양극화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고 치열한 토론을 해야 한다. 한 나라를 끌고 가겠다는 지도자라면 연금개혁 등 득표에 도움은 안 될지 모르지만 국가에 반드시 필요한 정책을 당당히 내놓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정치가 민생과 경제의 발목을 잡는 모습을 더 이상 보여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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