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씨는 눈이 멀쩡한데도 브로커와 짠 한 안과병원에서 백내장 진단을 받고 1050만 원짜리 시력교정 수술을 받았다. 전체 비용 중 945만 원이 실손보험에서 나갔다. ‘사지 통증’을 호소한 B 씨는 병의원에서 250차례 진료를 받은 뒤 실손보험금으로 7400만 원을 받았다. A 씨 사례는 보험사기, B 씨 사례는 과잉진료라고 할 수 있다.
▷‘제2의 건강보험’인 실손보험을 파는 보험사들은 사기와 도덕적 해이 등으로 손해가 커졌다며 올해 보험료를 평균 14.2% 인상하기로 했다. 2017년 3월 이전 판매한 1, 2세대 보험은 16%, 2017년 4월부터 작년 6월까지 판 3세대 보험은 8.9%씩 오른다. 인상 대상 3500만 명 가운데 보험료가 3년, 5년마다 갱신되는 일부는 올해 인상률에다 과거치 인상분이 반영돼 보험료가 2배로 뛸 수 있다. 당장 이달부터 ‘보험료 폭탄’이 터질 판이다.
▷실손보험료를 이 정도로 올린다고 해서 전체 손해를 상쇄하기는 어렵다고 보험업계는 주장한다. 하지만 1년 내내 병원 한 번 가지 않는 사람에게 지금의 인상률 통보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다. 실제 2020년 기준 실손보험금을 한 푼도 받지 않은 사람은 전체의 62%, 2181만 명에 이른다. 연간 보험금을 1000만 원 이상 받은 2.2%(76만 명) 때문에 생긴 손해를 전체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것이 공정한 정책이냐는 비판이 적지 않다.
▷과잉진료는 영리에 집착한 일부 병의원과 자기 돈 들이지 않고 고가의 진료를 받고 싶어 하는 얌체 소비자 때문에 생긴 부작용이다. 백내장 수술 시 비싼 다초점렌즈를 과도하게 사용해 손해가 커지자 정부는 2016년 이 고가의 렌즈를 보상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러자 렌즈 가격은 내려갔지만 대신 비급여 검사비가 급등했다. 동네 의원의 1회 평균 검사비가 26만 원으로 상급 종합병원(8만 원)의 3.3배로 뛰었다. 예측 불가의 보험금 ‘풍선효과’ 때문에 약관 변경도 쉽지 않다.
▷실손보험은 비급여 항목 중 보장하지 않는 질병을 나열하고 그 이외 질병을 모두 보장하는 ‘네거티브’ 방식이다. 2005년만 해도 도수치료라는 개념 자체가 생경했다. 그때는 도수치료를 무한정 보장해도 문제 될 게 없었지만 이 치료법이 대중화한 지금은 다르다. 기술 발전으로 새로운 치료법이 끊임없이 생겨나는 구조에서 실손보험의 손해는 숙명 같은 것이다. 이 숙명적 구조를 빼놓은 채 인상률만 조정해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긴 어렵다. 실손보험 적자는 지난해 3조6000억 원에서 올해 2조 원으로 줄지만 여전히 천문학적인 규모다. 보험료 폭탄을 1년 뒤로 미뤄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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