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의 신년 인터뷰에 응한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석좌교수가 내놓은 국제 정세에 대한 예측은 섬뜩했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광대한 시장과 막강한 정부 지원으로 쌓은 경제적 영향력을 외교·군사적 영향력으로 바꾸고 있는 중국이 동아시아에서 조만간 미국의 영향력을 제칠 것이라는 예상이다. 미국을 추월하는 시점에 대해선 “중국의 국민소득이 한국이나 일본 수준이 되는 때”라고 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010년 중국 경제규모를 2035년까지 2배로 키우겠다고 한 목표를 달성하면 13년 뒤 중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만5000달러에 달하게 된다. 빠르면 10∼15년 내 절대 강자 미국이 세계 질서를 이끌던 시대는 막을 내릴 것이라는 얘기다.
두 번째는 미중 갈등이 결국 전쟁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미어샤이머 교수가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으로 꼽은 곳은 단연 대만 해협이다. 미국과 중국의 군사적 충돌이 튀기는 불꽃은 두 세력이 맞닿는 지정학적 위치에 자리 잡은 한국에는 걷잡을 수 없는 불길이 될 공산이 크다.
세 번째는 미국 동맹구조의 변화다. 미소 냉전 시대 유럽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만들어 소련을 견제했던 것과 달리 유럽과 아시아의 지리적 차이 때문에 중국을 견제할 역내 다자안보체제를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미어샤이머 교수의 분석. 결국 중국과 소련이라는 한 번에 상대하기 어려운 두 강대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은 일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대중국전략이 된 인도태평양 정책이나 미국 일본 호주 인도의 4자 협력체인 ‘쿼드(QUAD)’는 사실 모두 일본이 처음 제시한 아이디어들이다. 특히 최근 일본은 미국에 대중국 견제 정책 틀을 제시하는 것을 넘어 미국의 대만 방어 전략에 직접 참여하면서 미중 갈등으로 높아진 일본의 지정학적 가치를 군사력으로 전환하고 있다.
미국이 재무장을 마친 일본과 손을 잡고 중국, 러시아와 군사적으로 충돌하는 세계가 바로 미어샤이머 교수가 내다본 10∼30년 내 다가올 미래다. 그런 약육강식의 질서에서 한국이 생존하려면 미국과 첨단기술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게 그의 조언이다. 북핵 문제와 한국 경제의 중국 의존도를 고려할 때 한국이 중국 견제의 최전선에 나서기 어렵다면 미국과 중국이 집중하고 있는 첨단기술 분야를 외교·국방 전략과 결합해 한국이 존재감을 키워야 한다는 얘기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외교·국방 전략에 과학기술 정책을 접목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는 게 워싱턴 외교가의 분석이다. 미 국무부는 최근 인공지능(AI), 5세대 이동통신, 양자컴퓨팅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과학기술 외교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사이버·디지털 정책 부서를 새로 만들었다. 미국 국방부는 캐슬린 힉스 차관 주도로 펜타곤이 장기 육성해야 할 과학기술 분야를 정하고 펀드를 조성해 첨단 기술기업들의 실험을 지원하고 있다.
21년 전 현재의 미중 패권전쟁을 내다본 미어샤이머 교수의 예측이 이번에도 들어맞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정치적 내전 상태라는 극단적 평가를 받는 미국 정치권이 유일하게 한목소리를 내는 분야가 바로 중국 견제 정책이다. 우리는 성큼 다가오고 있는 격변의 국제질서를 헤쳐 나갈 전략을 준비하고 있을까. 섬뜩했던 그의 예측보다 어쩌면 더 섬뜩한 질문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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