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삶 속의 호랑이[기고/윤열수]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월 3일 03시 00분


윤열수 가회민화박물관장
윤열수 가회민화박물관장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호랑이를 일반적인 짐승이 아니라 존숭(尊崇)과 신앙(信仰)의 대상, 그리고 동시에 공포의 대상, 보은(報恩)의 영물(靈物)로 인식했다. 호랑이가 가진 용맹함, 강인함, 지략(智略)과 의리, 덕성(德性) 때문이다. 지금도 호랑이는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동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호랑이의 특성이 가장 잘 반영된 민화는 까치 호랑이다. 까치 호랑이는 17세기부터 그려지기 시작해 19세기에 유행이 절정을 이루었으며, 비교적 최근까지도 그려져 한국의 호랑이 미술을 대표할 만큼 그 수가 많다. 까치 호랑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알려진 민화 가운데 하나다. 해학적이고, 풍자적이며, 추상적인 표현과 다양한 채색으로 조선 후기 민중의 심성을 가장 잘 표현한 그림이다.

호랑이는 맹수이기 때문에 사나운 모습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실제 우리 미술품에 나타나는 모습은 인자하고 근엄한 얼굴, 부드러운 얼굴, 바보 같은 얼굴, 우리 할아버지의 모습 같은 얼굴 등 우리가 친근하고 편안하게 여기는 표정이 많다. 그런가 하면 까치나 토끼에게 골탕을 먹고 잔뜩 약이 오른 표정이나, 동물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은 모습, 벌 받으면서 괴로워하는 모습의 호랑이도 있다. 또 산군(山君)다운 근엄한 표정을 짓거나 동방예의지국의 군자답거나, 인간을 나무라는 엄격한 심판자 같은 호랑이도 있다. 이처럼 호랑이에게 다정한 친구나 동네 어르신과 같은 인격을 부여한 우리 민족의 인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미술품이 바로 민화 까치 호랑이다.

우리 민족은 오래 전부터 호랑이를 미술 소재로 활용해왔다. 현재 알려진 전 세계의 호랑이 미술 중 가장 오래된 반구대 암각화 속 호랑이가 시작이었다. 선사시대를 지나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호랑이는 신령한 영물이자 신앙의 대상으로서 죽은 사람을 보호하고 불법을 수호하는 수호신 역할을 담당했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면 무신도(巫神圖), 산신도(山神圖), 불교 회화, 도교 회화 등 다양한 종교화에 호랑이가 등장한다. 유교를 신봉하던 조선시대 지배 계층 또한 호랑이를 좋아하고 즐겨 그렸던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사찰 벽화와 왕릉 석상, 회화와 공예품, 자수 작품에 이르기까지 호랑이가 등장하지 않는 분야가 없을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호랑이 미술품이 많이 남아있다.

이처럼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미술 소재였던 호랑이는 지금도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88서울올림픽 마스코트로 호돌이가 선정된 지 30년 후인 2018 평창 겨울올림픽 마스코트로 수호랑이 태어난 것은, 호랑이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현대 사회에서도 변치 않고 우리 민족의 마음속에 살아 숨 쉬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호랑이를 아끼는 우리 민족의 감성은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검은 호랑이해인 임인년(壬寅年)에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용맹하고 다정한 호랑이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두려움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호랑이#우리네 삶#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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