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새해부터 위기에 빠지자 사람들이 그 이유를 찾느라 부산하다. 상당수는 부인 김건희 씨 논란과 함께 선대위를 망가뜨린 이준석 당 대표와의 내전(內戰)을 꼽는다. 아들뻘 하나 품지 못하는 정치력에 혀를 찬다. 하지만 이준석에 대한 피로감도 커지고 있다. 결국 이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쌍방 과실’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정치권을 오래 지켜본 사람들은 다른 이슈에 잠시 가려졌지만 윤석열의 입이 문제의 본질이라고들 한다. 전두환 발언 때만 해도 단순 실수인 줄 알았는데 ‘부득이 국민의힘 선택했다’ ‘청년 대부분이 중국을 싫어한다’에 이어 ‘미친 사람들 아니냐’까지 나오자 찍기 고민스럽다는 반응이 많다. 그가 정치 자산으로 내세우는 공정과 상식은 스스로의 성취라기보단 문재인+조국+추미애라는 ‘내로남불 연합’에 대한 반사효과로 얻은 것이다. 말실수 몇 방이면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더욱이 대선 본선은 그야말로 말의 전쟁. 결국 김종인이 “후보의 메시지, 연설문을 직접 관리하겠다”고 하기에 이르렀다.
윤석열은 왜 계속 말실수를 하는 것일까. 주변에선 ‘정치 초짜’의 경착륙 과정이라 여기는 듯하다. 한 측근 인사는 “새해 첫날 큰절한 것 보라. 학습 능력이 좋아서 말도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런 전망은 한국 보수세력 특유의 대책 없는 낙관론이라고 필자는 본다. 유권자의 마음을 사는 ‘정치 언어’가 무슨 대치동 학원에서 속성으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윤석열의 화법, 언어에 대한 인식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윤석열은 다변가(多辯家)다. “종종 삼천포로 빠지니 주의하라.” 지난해 말 윤석열을 인터뷰하기 전 그를 잘 아는 지인이 필자에게 해준 말이다. 실제로 만나 보니 삼천포를 지나 남해 바다 한가운데까지 가는 경우도 있었다. 컨디션이 좋으면 몇 시간이고 대화를 주도하는 스타일이다. 이런 화법을 시중에선 ‘구라’라고 하는데, 이게 사적 대화에선 좌중을 휘어잡을 수 있지만 정치 언어로선 어디로 튈지 몰라 스스로 지뢰를 품는 격이다.
더 큰 문제는 정치 언어에 대한 인식이다. “정치 세계는 공직 세계나 학문 세계와 달라 상대에게 빌미를 주면 늘 왜곡되고 공격당할 수 있다.” 윤석열이 지난해 12월 28일 한국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실언 논란에 대해 한 말이다. 나는 A라고 말했는데 왜 민주당과 일부 언론에선 B라고 비판하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에선 내가 사실이라 믿는 것보다 밖에서 어떻게 인식되는지가 더 중요할 때가 많다. ‘정치 IQ’가 뛰어난 정치인은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파악하고 필요하면 실제와의 차이를 줄이려 한다. 이런 인식이 부족하다 보니 윤석열의 사과 타이밍이 늘 한두 박자 늦었던 것이다. 이는 이회창 황교안 전 국무총리 등 실패로 끝난 법조인 출신 대선 주자들이 매우 취약했던 대목이기도 하다.
결국 언어 문제에 있어서 윤석열 후보는 여전히 검사 티를 못 벗고 있다. 검사 시절에야 피의자들이 절대 갑(甲)인 윤석열의 말을 끝까지 경청했겠지만 유권자들은 그럴 이유가 없다. 무한대의 정보가 오가는 요즘은 한두 마디 상징적 언어로 정치인의 전체를 기억하는 경향이 어느 때보다 강하다. 윤석열이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검사 시절 한 문장으로 회자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정치의 팔 할은 결국 커뮤니케이션이다. 하물며 대선에 도전하는 후보가 말에서 어그러진다면 선거 기간 내내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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