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공원공단은 1일 북한산 설악산 지리산 등 전국 21개 국립공원의 해맞이 행사를 전면 금지했다. 탐방로는 전날 오후 3시부터 이날 오전 7시까지 통제됐다. 부산 해운대와 경북 포항 호미곶 등 일출 명소 등도 폐쇄됐다.
하지만 새해 첫 일출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공단은 지리산, 속리산, 덕유산, 내장산, 북한산, 무등산, 치악산 등의 일출 장면을 국립공원TV를 통해 방영했다. 해변의 여러 해맞이 행사들이 취소됐지만 일출을 볼 수 있는 동해안 일대에는 많은 차량이 몰리기도 했다.
공단이 해맞이 행사들을 금지한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도 불구하고 새해 첫 일출을 보기 위해 많은 탐방객들이 고지대에 밀집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 조치는 사람들 사이의 거리 두기를 위해 실시됐지만 결과적으로 사람과 자연 사이의 거리 두기 결과도 생겼다. 해맞이 행사가 취소된 건 아쉽지만 신년 인파로 산들이 겪었을 몸살은 줄었을 것이다.
산에서의 신년 해맞이는 오랫동안 전해져온 우리의 문화이다. 해맞이는 자연과의 교감을 바탕으로 한다. 일출이라는 자연현상 앞에 희망과 다짐을 둘러싼 각자의 내면 풍경을 더해 안팎으로 밀도 있는 순간을 경험하게 하는 행사다. 유명한 산들이 해맞이 장소로 선호되는 것은 주변의 장엄한 풍경들이 이런 순간의 경험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해맞이 행사들이 금지됐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거기에 참가하려는 사람들이 현재 상황이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날 만큼 많았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폭발적 잠재 수요다.
호연지기를 기르기 위한 것이건 건강과 취미를 위한 것이건 자연과의 교감을 추구하는 행위는 예부터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점점 더 기계화되어 가는 현대 문명 속에서 자연 속에서의 활동(아웃도어 활동)은 정신적 치유와 신체 단련을 겸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국민 9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0 국민생활체육조사에 따르면 종목별 생활체육 참여율에서 등산(17.6%)이 걷기(41.9%)에 이어 전체 2위였다.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면 등산을 비롯한 여행 레저 등 각종 아웃도어 활동들은 지금보다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이때를 대비해 아웃도어 활동들이 자연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세밀히 짚어 보고 행동지침을 마련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 14개를 모두 오른 뒤 국내외에서 청소등반을 해온 산악인 한왕용 씨(56)는 지난해 말부터 전국을 돌며 일종의 아웃도어 윤리교육인 LNT 강연회를 열고 있다. ‘흔적 남기지 않기(Leave No Trace)’의 뜻을 지닌 LNT는 자연과 함께하되 그 피해를 최소화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전개돼온 친환경 아웃도어 활동 지침이다. 자연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한 철저한 사전 준비와 계획을 마련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 어떤 것도 건드리지 말고 보는 데 만족하자는 내용이다. 점차 뜻있는 사람들을 모아 활동가를 양성하고 우리 자연에 맞는 LNT 내용을 발전시키려는 것이 그의 계획이다. 히말라야 등반 도중 일본 원정대 캠프에 들렀다가 한국 등반대가 인근에 남기고 간 쓰레기와 음식물을 마주치고 부끄러움을 느꼈다는 그는 “산에 다니던 사람으로서의 책임감”을 LNT 운동을 하는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이 땅의 자연에 대한 책임이 그 한 명에게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자연에 영향을 주는 것은 우리 모두의 집단행동이며 그 결과 또한 우리 모두가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웃도어 활동을 무조건 규제하거나 막을 수는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아웃도어 활동들이 얼마만큼 자연과의 건강한 관계 속에 이루어지느냐이다. 이를 위한 활동 지침을 마련하는 것은 곧 우리 모두를 위해서이다. LNT 운동뿐만 아니라 같은 의도를 지닌 다양한 시도가 일어나고 확산되기를 바란다.
해맞이 행사가 다음엔 다시 열리기를 희망한다. 그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더라도 질병을 옮기는 바이러스의 확산이 없기를, 또한 자연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행동이 깊고 성숙해져 인간의 밀집이 곧 자연 훼손을 연상시키지 않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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