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가족 이야기[클래식의 품격/노혜진의 엔딩 크레디트]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월 4일 03시 00분


어느 노부부의 여행을 통해 변화하는 전후 일본의 가족 관계와 인생 문제들을 담담히 그려낸 ‘동경이야기’(1953년)는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걸작으로 꼽히며 세계 영화사에서 명작으로 회자되는 작품이다. 2012년 영국영화연구소(BFI)에서 발간하는 ‘사이트 앤드 사운드’ 잡지 역대 최고의 영화 리스트에서 감독들이 1위로 선정했다.

오노미치에 살고 있는 노부부 슈키치(류 지슈)와 도미(히가시야마 지에코)가 출가해서 도쿄에 살고 있는 자식들 보러 여행을 간다. 기차 타고 꼬박 하룻밤과 반나절이 걸리는데 중간에 오사카 역에서 막내 아들 게이조(오사카 시로)가 잠깐 나올 정도로 그들한테는 드문 여행이다. 도쿄 변두리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는 장남 고이치(야마무라 소)의 집과 작은 미용실을 운영하는 장녀 시게(스기무라 하루코)의 집에 차례대로 묵는다. 둘은 각자 일이 있어 부모님이 부담스러운 입장들이다.

그 대신 몇 년 전 2차대전에서 죽은 둘째 아들의 아내인 며느리 노리코(하라 세쓰코)는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휴가를 내서 도쿄 구경을 시켜준다. 작은 방에 살고 있지만 집에서 저녁도 대접한다. 계속 바쁜 고이치와 시게는 돈을 모아 부모님을 아타미 온천 여행을 보내는데, 밤에 시끌벅적한 여관에서 잠을 못 이룬 부부는 일찍 돌아온다. 시게는 사실 집에서 하는 모임 때문에 방이 필요했던 터, 노부부는 짐을 싸서 공원에 나간다. 도미는 노리코네서 자고 슈키치는 옛 친구와 술 한잔 하다가 그 집에 묵을 태세로 나선다.

그런데 결국 밤늦은 시간, 만취 상태로 친구까지 달고 시게네 집에 나타난 슈키치. 늦둥이 막내딸이 태어날 때까지 술꾼이었던 아버지의 진상에 이미 질렸던 시게가 화를 낸다. 똑바로 걷지도 못하는 슈키치와 친구는 코믹하다. 그런데 왜 장남과 장녀가 부모에 대한 기본 예의만 갖추고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굳이 노력하지 않는지 언뜻 들여다볼 수 있게 되는 장면이다. 슈키치는 사정이 있어 술을 먹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에 대처하며 수년간 자라야 했던 자식들도 이제는 바쁜 때. 그들도 사정이 생긴 것이다.

나중에 도미의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 막내딸 교코(가가와 교코)가 언니와 오빠들의 태도에 불만을 갖지만, 그녀는 다른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자란 사람이다. 여행 때 그리고 장례 때 혈육보다 잘 챙겨줬다는 며느리 노리코는 각자의 삶이 생기면 다 변해 가는 것이라 말해 주기도 한다.

영화는 큰 반전 없이 흘러가지만, 각자 보는 사람의 입장과 얼마나 깊이 들여다보느냐에 따라서 다른 층과 겹을 볼 수 있게 하는 매력이 있다. 새해에 또 세월이 흐르는 중, 한번 곱씹어 볼 만한 영화다.

#가족#동경이야기#오즈 야스지로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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