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과 1965년. 어떤날의 두 멤버 조동익과 이병우는 자신들의 첫 앨범 표지에 각각 태어난 해를 적어 두었다. 첫 앨범이 1986년에 나왔으니 이제 스물여섯, 스물하나의 젊은 나이였다. 이들은 기성 가요와는 다른 어법으로 주목받았다. 새로운 사운드를 들려줬고, ‘가창력’이 없는 노래여도 얼마나 큰 울림을 줄 수 있는지를 알려줬다. 새로운 세대의 출현이었고, 이는 곧 젊은 거장의 탄생을 뜻했다.
물론 이는 후대의 평가, 외부의 평가였을 뿐이고 당연히 이들에게도 처음의 떨림과 긴장은 존재했다. 조동익의 말을 빌리면 1집 녹음은 그야말로 부들부들 떨면서 했다고 한다. 반면 3년 뒤 2집 녹음을 할 때는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두 멤버는 조금 더 어른이 되어 있었다.
어른의 정서는 음악에도 담겨 있었다. 1집에 “창밖의 빗소리에도 잠을 못 이루는” 여린 가슴을 가진 이가 있었다면 2집에선 “술 취한 내 두 다리가 서성거리는 까만 밤”을 보며 방황하는 어른이 있었다. 음악 역시 1집이 풋풋했다면 2집은 좀 더 멋을 부리고 세련됐다. 두 장 다 훌륭해 어떤날을 좋아하는 이들은 ‘두 앨범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면 무얼 고를까’ 하는 즐거운 고민을 하기도 한다.
이런 ‘다름’에도 변하지 않은 게 있었다. 이들의 음악에 담겨 있는 연약한 정서였다. 어떤날의 음악에는 이른바 ‘남자답다’ 같은 형용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당시에는 더 드문 정서였다. 창밖의 빗소리에도 잠을 못 이루는 연약함과 늦잠을 자고 일어난 ‘오후만 있던 일요일’에 노란 풍선처럼 달아나고 싶은 무력함이 있었다. 햇살이 아프도록 따가운 날엔 파란 하늘이 열린 곳으로 가는 개인이 있을 뿐이었다. 이 연약한 개인의 노래에 비슷한 정서를 가진 많은 이들이 조용히 열광했다. 김현철, 유희열, 이적 등은 모두 ‘어떤날 키드’를 자처한다.
어떤날 2집의 머리곡 ‘출발’은 그런 이들과 함께하는 새로운 시작의 노래다. 보통 새로운 시작에는 커다란 목표 같은 것들이 따르지만 이들의 ‘출발’은 여전히 어떤날스럽다. “거진 엇비슷한 의식주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은근히 자라난 손톱을 보며” 변화를 느끼는 나의 출발에 어떤 담대한 목표나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세부적인 계획보다는 더 근원적인 것을 향한다.
“그래 멀리 떠나자 외로움을 지워보자/그래 멀리 떠나자 그리움을 만나보자”란 노랫말은 지금 시대에 더 큰 울림을 갖는다. 팬데믹 시대에 더 외로워진 사람들이 있다. 그리운 이들과 그리운 것들을 만나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노래를 부른 이병우는 목소리를 높이지도, 감정을 크게 자극하지도 않으면서 외로움을 지우고 그리움을 만나자고 담담하게 노래한다. 2022년은 부디 어떤날의 노래처럼 소박하지만 그 무엇보다 거대한 가치가 이루어지는 해가 되길 바란다. 외로움을 지우고, 그리움을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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