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중현]‘성공한 경제 대통령’ 호소인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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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말 文 대통령 성장률 자랑
이념형 경제정책 실패 못 덮어

박중현 논설위원
박중현 논설위원
‘빨리빨리’가 몸에 밴 한국 공무원들이 선진국 중 제일 먼저 통계를 낸다는 걸 간과한 게 화근이었다. 작년 1월 신년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한국의 성장률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1위”라고 자랑했다. 코로나19 충격이 반영된 2020년 성장률이 ―0.9%로 ‘K방역’에 힘입어 다른 나라보다 선방한 점을 강조했던 것이다.

하지만 곧이어 나온 노르웨이 성장률이 예상보다 호전돼 ―0.8%로 한국을 앞섰다. 3.4%나 플러스 성장한 아일랜드도 등장했다. 이어 뉴질랜드(+1.0) 호주(―0.3) 터키(+1.8%)가 줄줄이 한국을 추월했다. 결국 한국은 OECD 38개 회원국 중 리투아니아(―0.9%)와 함께 공동 6위로 밀렸다. OECD 회원국이 아닌 중국(+2.2%) 대만(+3.1%)이 빠진 순위가 이랬다. 사정을 훤히 알아도 대통령 말실수에 소금을 뿌릴 수 없는 기획재정부는 작년 말 현 정부 4년 반 경제성과를 자평하면서 2020년 성장률을 ‘G20(주요 20개국) 중 3위’라고 슬쩍 바꿨다. 그런데 이 또한 중국, 터키, 호주에 이은 4위가 진실이다.

이달 3일 임기 중 마지막 신년사에서 문 대통령은 다시 “위기와 격변 속에서 우리 경제는 더욱 강한 경제로 거듭났습니다. 선진국 가운데 지난 2년간 가장 높은 평균 성장률을 기록하면서…”라고 했다. 작년 성장률 4.0%는 미국(5.6%) 유로존(5.2%) 중국(8.0%)보다 낮지만 마이너스 폭이 작았던 재작년과 합해 평균하면 순위가 높아진다는 데 착안한 것이다. OECD, G20 등 비교 대상이 뚜렷해 꼬투리 잡힐 말 대신 ‘선진국’이란 표현을 쓴 게 묘수다.

수출 제조업이 강한 한국의 성장률은 관광 등 서비스업 비중이 큰 유럽 등 선진국보다 좋은 게 당연했다. 그런데도 순위를 분식(粉飾)해서까지 “가장 높은 성장률”을 강조한 건 ‘경제에 성공한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대통령의 욕심일 것이다. 성과는 작아도 부풀리고, 실패는 커도 침묵해 지지율을 지켜온 ‘문재인식 통치술’의 편린이기도 하다.

작년 11월 ‘국민과의 대화’에서도 이런 심경이 읽혔다. 대통령은 마무리 발언에서 정색하고 “한국은 정말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 이런 성취를 부정하고 폄훼한다면 그것은 우리 정부에 대한 반대나 비판 차원을 넘어 국민이 이룬 성취를 폄훼, 부정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라고 했다. 국민과 기업이 인내와 노력으로 일궈낸 경제성과는 당연히 깎아내려선 안 될 일이지만 “정부에 대한 반대나 비판”까지 끼워 넣은 건 치사한 무임승차다.

현 정부는 코로나 발생 초기 중국 입국자 차단, 백신 조달의 타이밍을 놓쳐 경제 충격을 최소화하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세계 주요국 중 1위 집값 상승률로 국민 허리를 휘게 했다. 재작년 총선 직전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결정은 ‘한국 포퓰리즘사(史)’에 길이 남을 것이다. 국민을 ‘월급 주는 자’와 ‘월급 받는 자’로 가르고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려 일자리를 줄인 건 이념형 정책실험의 실패 사례로 경제 교과서에 실릴 만하다. 언젠가 재정 악화로 국가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사태가 온다면 나랏빚 폭증에 본격 시동을 건 정부로 다시 소환될 것이다.

‘성공한 경제 대통령’은 시간이 흐른 뒤 대다수 국민이 동의해야 얻을 평가다. 지금 ‘우리 정부 경제정책은 실패하지 않았다’고 아무리 강조해봐야 일방적 주장일 뿐이다. 임기 말에야 “일자리 창출은 기업의 몫”이란 깨달음을 얻었다면 한 번도 참석하지 않은 ‘경제계 신년인사회’에 나가 외롭게 경제를 지켜온 기업들에 감사의 마음이라도 전하는 게 좋았을 것이다.

#경제 대통령#호소인#문재인#한국 성장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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