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에서 살아남기[이은화의 미술시간]〈196〉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월 6일 03시 00분


코멘트
앙리 루소 ‘놀랐지!’, 1891년.
앙리 루소 ‘놀랐지!’, 1891년.
앙리 루소가 그린 정글 풍경화다. 폭풍우가 내리치는 날, 호랑이는 번개 때문인지 먹잇감을 덮치기 위해선지 몸을 한껏 낮추며 앞으로 향하고 있다. 동그란 눈을 크게 뜬 맹수는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며 무엇을 쫓고 있는 걸까?

파리시 세관원이었던 루소는 취미로 그림을 그리다가 49세에 은퇴 후 전업 화가가 되었다. ‘일요화가’라는 조롱 속에서도 ‘앵데팡당’전에 꾸준히 참가하며 꿈을 키웠다. 그림을 배운 적 없어 표현은 서툴렀지만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는 자신만의 독특한 기법을 창조했다. 이 그림은 그에게 명성을 안겨준 20여 점의 정글 연작 중 첫 작품이다.

그림이 전시됐을 때, 아이 그림처럼 유치하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이국적인 주제와 독특한 화면 구성에 대한 찬사도 이어졌다. 그림 속 배경은 멕시코의 정글이다. 루소는 군복무 당시 멕시코 정글을 경험해 봤다고 주장했지만, 사실 그는 단 한 번도 프랑스 땅을 벗어나 본 적 없었다. 세밀하게 묘사된 열대식물들은 파리 식물원에서 본 것들이었다. 호랑이는 파리 만국박람회 때 전시된 박제 동물을 참조해 그렸다. 실제 풍경이 아닌 상상화인 것이다.

‘놀랐지!’라는 제목도 상상력을 자극한다. 평론가들은 호랑이가 먹잇감을 놀라게 하는 장면이라 해석하지만, 호랑이가 쫓는 사냥감은 그려지지 않았다. 루소는 이 그림에 대해 ‘탐험가를 쫓는 호랑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렇다면 화면 너머에 총을 든 탐험가가 서 있는지도 모른다.

정글에서 사람과 호랑이가 마주치면 누가 더 놀라서 겁을 먹을까? 호랑이가 두려워하는 존재는 더 사나운 맹수가 아니라 인간일지도 모른다. 다만 무기든 힘이든 지혜든 상대보다 뛰어나야 정글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터. 준비 없이 정글에 간 탐험가는 호랑이의 만만한 먹잇감으로 희생될 게 뻔하다. 미술을 배운 적 없는 루소가 치열한 미술계의 정글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상상력과 독창성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글#앙리 루소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