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재판거래’ 의혹 영장 기각, 법원 제 식구 감싸기 아닌가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월 7일 00시 00분


권순일 전 대법관.  © News1
권순일 전 대법관. © News1
검찰이 권순일 전 대법관의 ‘재판 거래’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대법원 재판 자료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지난해 12월 두 차례 청구했지만 법원에서 모두 기각됐다고 한다. 영장청구에 앞서 검찰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과 관련한 재판 자료를 임의 제출해 달라고 대법원에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법원은 검찰이 청구한 권 전 대법관의 계좌추적 영장도 기각했다.

권 전 대법관은 재임 중이던 2020년 7월 이 후보 사건이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될 때 캐스팅보터 역할을 했다. 대장동 개발업자인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씨를 전합 회부 다음 날 등 8차례 집무실에서 만났고, 같은 해 9월 퇴임한 뒤 화천대유 고문으로 들어가 약 10개월 동안 월 1500만 원씩의 고문료를 받았다. 이른바 ‘50억 클럽’ 의혹이 제기된 고위 법조인 등의 리스트에도 권 전 대법관 이름이 나온다.

그런데도 검찰은 지난해 11월 권 전 대법관을 한 차례만 조사했다. 더구나 미등록 상태에서 화천대유의 자문 활동을 한 변호사법 위반 혐의를 주로 들여다봤다고 한다. 재판 거래 의혹과 관련해서는 재판 자료를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권 전 대법관을 불렀다. 그러니 제대로 조사가 됐을 리 없다.

의혹의 당사자인데도 법원은 검찰보다 더 문제다. 지난해 9월 재판 거래 의혹이 불거진 이후 법원이 지금까지 보여준 태도를 보면 ‘제 식구 감싸기’ 의혹이 짙다. 권 전 대법관이 퇴임했다는 이유로 대법원은 진상조사를 하지 않고 있다. 재발 방지 대책이나 유감 표명 입장이 나온 적도 없다. 영장을 기각한 이유에 대해서는 “수사상 기밀”이라며 설명조차 않고 있다.

재판 거래 의혹은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뿌리째 흔들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다. 더구나 사법 시스템의 정점인 전직 대법관이 의혹의 중심에 서 있다. 이 사건의 진실을 제대로 규명하지 않은 채 적당히 덮고 가면 사법 시스템 전반에 두고두고 부담이 될 수 있다. 법원은 압수수색이든 임의제출이든 관련 자료를 검찰에 제출해 진실 규명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검찰도 적당히 법원의 눈치를 살펴선 안 된다.
#검찰#재판 거래 의혹#영장 기각#제 식구 감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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