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7년 미국 국회의사당의 중앙 로툰다홀에서 주먹다짐이 벌어졌다. 존 퀸시 애덤스 대통령의 아들이 아버지의 정적이었던 앤드루 잭슨의 지지자에게 뺨을 얻어맞고 가격당한 것. 성난 애덤스 대통령의 재발 방지 요청에 의회는 이듬해 의회경찰 조직을 신설했다. 당시 의회경찰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190여 년이 지난 2021년 성난 미국인 2000명이 무기를 소지한 채 몰려와 의회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놓을 것이라고는.
▷1·6 국회의사당 난입 사태가 1주년을 맞았다. 미국 민주주의의 상징인 ‘캐피톨 힐’이 유혈 폭력사태로 얼룩지는 장면은 미국인들에게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민주주의를 자유, 인권과 함께 건국의 기본 가치로 여겨온 미국에 씻기 어려운 치욕으로 기록됐다. 현재까지 703명이 기소되고 70여 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진상 규명과 처벌이 마무리될 때까지는 최소 1년 이상 더 걸릴 것이라고 한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아직도 현상금을 걸고 일부 용의자를 추적 중이다.
▷2020년 대선을 거치면서 극단으로 치달은 사회 분열과 정치적 양극화의 정점을 찍은 이 사건의 상흔은 깊다. 불신과 반목 속에 정치권은 1년이 지나도록 진상조사위원회 활동을 둘러싼 신경전을 이어가고 있다. 대외적 자존심의 상처도 만만치 않다. 중국은 미국이 반민주주의적 정책을 지적할 때마다 “당신들 문제나 잘 해결하라”는 비아냥거림으로 맞받아치고 있다. 해외의 권위주의, 독재정권으로부터 ‘민주주의를 논할 자격이 없다’는 식의 반발에도 직면한다. 브라질과 멕시코, 페루 등지에서 제기된 부정선거 의혹을 놓고는 “미국발 파급효과(spill-over)”라는 책임론이 거론됐다.
▷1·6 사태는 왜곡된 트럼피즘(Trumpism)의 극단적 분출이다. 미국인의 40%는 아직도 지난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극우음모론 집단 ‘큐어논(QAnon)’이 퍼뜨리는 각종 주장들은 여전히 물밑에서 스멀거리고, 이는 올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폭발적으로 재점화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형사처벌 여부는 이에 기름을 부을 뇌관이다.
▷민주주의가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1·6 사태로 미국이 200년 넘게 공들여온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데에는 불과 7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국제단체의 보고서에서는 ‘민주주의 후퇴국’으로 분류됐고, 미국인 10명 중 6명은 민주주의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본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어디 미국뿐이랴. 최근 10년간 전 세계 민주주의가 쇠퇴하고 있다는 경고등이 켜진 지 오래다. 민주주의의 이상이 온전히 현실화하는 데까지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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