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김기용]‘한한령’은 끝나지 않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월 7일 03시 00분


영화·드라마 잇단 수입 재개에 기대 나오지만
언제라도 비상식적 中 행태 되풀이될 수 있어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중국은 6년 동안 한국 문화 수입을 철저히 막아 왔다.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령)’까지 내렸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별에서 온 그대’(2014년), ‘태양의 후예’(2016년) 등 한국 드라마들은 2016년 상반기까지 중국에서 대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이후 ‘공식적’으로 자취를 감췄다. 영화, 예능 프로그램, TV 광고 등도 마찬가지다. 한한령이 한중 문화교류를 단박에 막아버린 셈이다.

한한령은 실체가 없다. 중국 당국은 한한령의 존재를 부인한다. 한국 문화 콘텐츠를 수입하지 말라는 공식 지침이 발표된 적도 없고, 문건은 더더욱 없다. 누가 수입을 금지시켰는지, 언제쯤 해제될지, 해제 조건이 있는지 없는지 등 알려진 바가 전혀 없다. 중국에서 큰 인기를 얻던 한국 드라마와 영화 등이 하루아침에 동시에 외면당하다 보니 ‘지도부가 명령했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추정은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중국은 한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에 반발해 보복을 예고했다. 제재를 하고도 모른 척하는 태도에 한국은 맥없이 당하며 하염없이 중국의 처분만 기다려 왔다.

최근 변화 움직임이 감지된다. 4일 이영애, 송승헌 주연의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사임당)’가 중국에서 첫 방송 됐다. 한국 드라마가 중국에서 공식 방영된 것은 2016년 이후 6년 만이다. 앞서 지난해 12월 초 한국 영화 ‘오! 문희’도 중국에서 6년여 만에 처음으로 개봉됐다. 영화와 드라마가 잇따라 중국에 소개되면서 사실상 한한령이 해제된 것 아니냐는 긍정적인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한국 문화 콘텐츠들이 중국 시장에 자유롭게 소개돼야 한다는 점에 이견은 없다. 한한령이 해제될 것 같은 움직임도 좋은 소식이 분명하다.

하지만 실체가 없는 한한령이 언제, 어떤 형태로든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한한령은 사드 배치 보복 측면도 있지만 그 밑바닥에는 중국의 한국 문화에 대한 두려움도 깔려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이번에 허용한 드라마 ‘사임당’은 한중 동시방송을 목표로 이미 2016년 11월에 중국 심의를 통과했던 작품이다. 6년 동안 묵힌 작품을 이제 열어준 것이다. 한한령 해제 의미를 부여하기 조심스럽다. ‘오! 문희’도 2020년 9월 한국 개봉 당시 흥행 성적이 35만 명에 그친 작품이다. 반면 전 세계를 강타하고 각종 영화제를 휩쓴 한국 영화 ‘기생충’은 아직 중국에서 개봉되지 못하고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중국은 올해 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아 지난해와 올해를 ‘한중 문화교류의 해’로 지정했다. 특별히 문화교류의 해로 지정까지 했으면서도 중국은 지난 1년 동안 한국 영화와 드라마 수입을 계속 막아왔다. 앞뒤가 맞지 않는 처사에 스스로도 민망했을 것이다. 상징적 측면에서라도 한국 영화와 드라마 수입이 필요했다. 생색내기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계층갈등, 빈부격차, 교육문제 등 민감한 사회 이슈를 다루는 작품은 모두 피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 문제를 집요하면서도 유쾌하게 파고드는 한국 작품들에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상당 기간 한한령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 당장 조금 완화되는 듯 보였다가도 어느 순간 사드 같은 빌미만 생기면 또다시 튀어나오는 일이 반복될 것이다. 중국이 한국 영화 1편, 드라마 1편 허용해 줬다고 일희일비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중국#한한령#해제#생색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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