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5세대(5G) 이동통신 이용자 수가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2000만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2019년 4월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지 2년 7개월 만이다. 첫 등장은 화려했다. 정부와 이동통신사들은 ‘롱텀에볼루션(LTE)보다 20배 빠른 속도’를 내세우며 일상과 산업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일상에선 잘 느껴지지 않는다. 지난해 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통신품질 평가를 보면 통신 3사의 5G 서비스 평균 다운로드 속도는 801.48Mbps(초당 메가비트)로 집계됐다. 최대 20Gbps(초당 기가비트)에 이를 것이란 공언은 물론이고 LTE의 이론상 최고 속도인 1Gbps에도 못 미친다. 일부 이용자는 과장광고로 피해를 봤다며 이동통신 3사를 상대로 소송까지 제기했다.
현재 고객 대상으로 서비스하는 주파수 대역은 3.5GHz(기가헤르츠)뿐인데, 이 대역의 최고 속도는 1.5Gbps에 불과하다. LTE의 20배 속도가 가능하려면 ‘진짜 5G’로 불리는 28GHz 대역을 활용해야 한다. 이동통신사들은 지난해 말까지 이 대역에 4만5000개의 장비를 세우겠다고 했는데 실제 실적은 0.7%인 312개에 불과하다.
시험에서 0점을 받았다면 1차적으론 학생을 혼내야 한다. 공부를 안 해도 너무 안 한 거다. 하지만 선생님도 책임을 피할 순 없다. 난도 조절에 실패했을 수도, 과목 자체가 학생 수준과 맞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애초에 28GHz를 설치하는 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주파수는 진동수가 높아지면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고, 휘거나 장애물을 통과하지 못한다. 그만큼 장비를 촘촘하게 깔아야 해 시간과 비용 부담이 크다. 전국망엔 부적합하고 기업용으로 써야 하는데 아직 수요도 많지 않다. 통신사들이 미적거리는 이유다. 차라리 3.5GHz에 더 투자해 품질 개선과 네트워크 안정성 확보에 주력하는 게 낫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정부는 불가능한 숙제를 거둬들일 생각이 없다. “대국민 약속”이라며 통신사들을 다그친다. 물론 28GHz를 포기하기 힘든 이유도 있다. 향후 6세대(6G) 통신까지 고려하면 초고주파 대역에 대한 기술 연구를 건너뛸 순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통신사들에만 맡겨 둘 사안은 아니다. 지하철 와이파이나 청년 임대주택 등에 깔아서 숫자만 맞출 일이 아니다. 정부와 통신사, 장비업체, 기업 등이 머리를 맞대고 생태계 구축과 활용 방안을 거시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수요가 없으면 공공투자가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할 수도 있다.
요금체계도 합리적 방향으로 손질해야 한다. 소비자들은 기다리면 더 빠른 5G를 이용할 수 있다는 믿음에 기대보다 낮은 서비스에도 높은 비용을 감수해왔다. 이제라도 다양하고 저렴한 요금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동안 정부와 업계는 ‘세계 최초 5G 상용화 국가’라는 타이틀에 연연해 속도전을 펴왔다. 이젠 현주소를 냉정하게 인식하고 실현 가능한 목표 수립과 서비스 개선에 힘써야 한다. 최고 속도가 아니라 체감 속도를 높여야 ‘진짜 5G’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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