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329〉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월 8일 03시 00분


창가에 놓아둔 분재에서
오늘 비로소 벙그는 꽃 한 송이
뭐라고 하시는지
다만 그윽한 향기를 사방으로 여네
이쪽 길인가요?
아직 추운 하늘문을 열면
햇살이 찬바람에 떨며 앞서가고
어디쯤에 당신은 중얼거리시나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씀 하나가
매화꽃으로 피었네요.
매화꽃으로 피었네요.
이쪽 길이 맞나요?


―한광구(1944∼)





좋은 것 중에서도 드문 것에 대하여 우리는 ‘귀하다’고 표현한다. 매화도 그중의 하나다. 봄날의 꽃은 많아도 혹한을 이기고 피는 꽃은 드물다. 옛 선인들은 백매화를 보면 깨끗하다 칭송했고 홍매화는 보면 신비롭다고 사랑했다. 그들에게 매화는 결코 물체가 아니었다. 그 속에 정신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화분 안에 심겨 있는 것은 분재가 아니라 일종의 마음이었다.

역사상 매화 사랑으로 가장 유명한 이는 퇴계 이황일 것이다. 그가 쓴 매화시만 해도 100편이 넘고 매화와 주거니 받거니 문답을 나누는 문답시도 있다. 오늘의 시에도 매화를 사랑하는 한 사람이 등장한다. 시인은 매화와 단둘이 마주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라면 눈을 마주하고, 이마를 비비듯 가깝고 기꺼운 자세다. 그러다 시인은 매화에게 질문한다. 뭐라고 하십니까? 그래, 이쪽입니까?

물론 매화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시인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왜 묻는가. 아까도 말했지만 매화는 물체가 아니라 정신이다. 거기에는 나도 미처 모르는, 나의 바람과 소망과 뜻과 의지가 들어 있다. 그러니 물어야 한다. 내가 사는 방향이, 가는 방향이 이쪽이 맞습니까? 우리 삶의 방향은 우리의 것이면서 우리의 것이 아니기도 하다. 가고 있으면서도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물으면서 더듬더듬 간다. 이쪽 길이 맞나요?

#매화#한광구#이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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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추천 많은 댓글

  • 2022-01-09 21:45:41

    '마음에서는 선인들, 억압자들, 악인들이 금지한 것들도 드러나고 나타난다, 상상의 자유니까. 하지만 지혜가 있는 사람만이 영혼을 규범으로 단련시킨다; 나무의 굽을 보고 있으면 인간의 직할 이유를 생각하고 성찰한다', 그런 윤리적 가치를 담아 고인들도 경구를 남긴 거죠.

  • 2022-01-09 21:38:38

    '나는 죽어 팔도 산천이 될 것이다: 최남선'처럼 인간 심성 근원에서 유물론도 나오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란 경구처럼 또 심성 근원에서 민주주의, 사회주의도 나오고 '매화는 물체가 아니라 정신'이란 경구처럼 마음에서 또 유심론이 나오고 그건 철학이고 과학까지는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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