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삼성전자의 베트남 호찌민 공장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해 일부 생산라인이 멈췄다. 삼성의 해외 생활가전시설 중 두 번째로 큰 호찌민 공장은 하루만 세워도 매출 목표에 큰 차질이 생긴다. 핵심 사업장의 조업 차질에 미중 무역갈등, 반도체 장비 공급 부족까지 겹쳤다. 기업 환경에 대한 우려가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지난해 매출이 1969년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인 279조 원에 이르렀다. 반도체, 생활가전, 모바일 등 전 영역에서 예상을 뛰어넘는 호조세를 보인 결과다.
▷연매출 279조 원은 한국 경제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숫자다. 이는 2020년 기준 코스닥 1271개사 매출의 2배, 코스피 597개사 매출의 7분의 1에 달하고, 올해 정부 예산(607조 원)의 절반에 육박하는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사람이 국내외에서 생산 활동을 한 대가로 받은 총소득(1819조 원)의 15%에 이르는 규모이기도 하다.
▷LG전자의 지난해 매출액도 74조 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나타냈다. 이로써 글로벌 가전 분야 경쟁에서 LG는 월풀을 뛰어넘어 세계 1위로 올라설 것으로 보인다. 프리미엄 제품인 LG오브제컬렉션 라인업과 건조기, 스타일러, 식기세척기 등 스팀 가전 분야 중심으로 소비층을 공략한 전략이 통했다. 생활가전 외에도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 분야에 집중해 성장세가 가팔라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기업가는 미래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결단에 따라 불확실성을 떠안는 사람들이다. 그 도전 의지를 우리는 기업가 정신이라고 부른다. 한국의 대표 전자회사들이 시장 전망을 뛰어넘는 실적을 낸 것은 소비자의 요구를 끊임없이 탐구하며 어두운 터널 속에서 선택하고 집중한 결과다. “창조와 혁신이 생동하는 과정을 바라보는 것이 기업가에게 더없이 귀한 순간”이라고 한 삼성 이병철 선대 회장의 기업가 정신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기업의 실적이 좋았다고 글로벌 정보기술(IT) 업계에 드리운 먹구름이 가신 것은 아니다. 코로나19 변이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터에 공급망 위기와 인플레이션 장기화 우려가 겹쳤다. ‘반도체 공룡’ 인텔이 삼성전자와 대만 TSMC를 따라잡으려고 대규모 투자에 나서는 등 머니게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모바일 분야는 단순히 좋은 제품만을 만드는 것으로는 안 되고 고객에게 차원 높은 경험을 제공해야 선택받을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이 됐다. 작년 11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미국 출장 직후 “현장의 처절한 목소리”를 언급했다. 이 목소리에 빨리 응답하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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