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송충현]경제불안 ‘혜성’ 오기 전 정치권이 해야할 일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월 10일 03시 00분


송충현 산업1부 기자
송충현 산업1부 기자
최근 넷플릭스를 통해 개봉한 ‘돈룩업’은 6개월 뒤 혜성이 지구와 충돌하는 상황을 가정한 ‘블랙코미디’ 영화다. 지구가 에베레스트산 크기의 혜성과 부딪힌다는 설정의 영화가 SF가 아닌 블랙코미디로 분류된 이유는 인류 종말이라는 사건 자체보다 사건을 다루는 정치인들의 행태를 풍자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한 내용을 소개할 순 없지만 영화는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표 관리’가 더 중요한 대통령과 정치인들의 모습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영화는 ‘혜성 충돌’이라는 극한 상황을 가정하고 있지만 혜성 충돌 대신 어떠한 상황을 설정으로 삼더라도 감독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엔 아무런 지장이 없다. 인류가 절멸하든 말든 편 가르기를 통한 지지층 결집이 유일무이한 목적이자 동력인 정치인들을 꼬집는 게 영화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지리적 배경은 미국이지만 미국이 아닌 국가를 배경으로 놓는다고 해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대선을 60일도 채 남기지 않은 한국의 정치 상황을 보면 영화 ‘돈룩업’에서 마주했던 장면들이 묘하게 겹친다. 팬데믹으로 고통받는 자영업자 등 수많은 경제 주체들의 아우성, 글로벌 공급망 위기와 각종 규제 안에서 불안해하는 기업인들의 호소는 대선 정국에서 아무런 이슈가 되지 못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소매유통 경기가 지난 분기에 이어 기준치를 밑돌 것으로 전망되고 수출 기업의 약 86%는 올해 통상 환경이 지난해보다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 대신 대선 정국을 채우고 있는 건 유력 후보들의 가족 리스크, 당내 알력, 허무하게 반복되는 정치인들의 이합집산 등이다. ‘돈룩업’에서 지구가 멸망할 수 있다는 과학자들의 제보는 한 TV 프로그램에서 대법관 후보의 스캔들, 유명 가수의 결별 소식에 이어 ‘가십’처럼 다뤄진다. 팬데믹으로 불안정한 경제 상황이 이어지며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고통이 깊어가고 있지만, 대통령 선거를 두 달 앞두고도 온통 소모적인 논쟁으로 채워진 한국의 정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적지 않은 유권자들은 유력 대선 후보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경제 공약이 무엇인지조차 알기 어려워한다. ‘코스피 5,000’ ‘집값 안정’ 등 달콤한 구호들은 난무하지만 기업들의 성장 잠재력을 어떻게 키울지, 저평가된 자본시장은 어떻게 개선할지, 중장기적인 조세 정책 방향은 무엇인지 아무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9년이나 빨라진 인구 5000만 명 붕괴 시대는 어떻게 대비할지에 대한 청사진도 찾아보기 어렵다.

다행히 대선까진 시간이 남아 있다. 후보들의 토론도 이어질 것이다. 경제 주체들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꾸준히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 왔다. 이제 이에 대한 답변을 대선 후보들이 건네줄 차례다. 그러곤 구체적이며 실현 가능한 공약 이행 방안을 유권자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정치인들이 정치에만 함몰될 경우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돈룩업’의 섬뜩한 결말로 잘 묘사돼 있다.

#경제불안#혜성#정치권#해야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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