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새해특집/글로벌 석학 인터뷰]〈5〉프랑수아 쥘리앵 佛 파리7대학 교수
中, 美에 안흔들릴 만큼 성장… 방역 명분 손쉽게 국민 통제
정치 없는 日, 권위주의 中… 한국은 비판정신 살아 있어
한국 대선서 포퓰리즘 아닌 공감의 리더십 제시 필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중국은 이득을 봤고 ‘최고의 순간’을 맞았다. 하지만 통제사회의 한계 또한 명확해 어느 시점에서 중국 내부의 불만이 폭발할 수 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그리스 철학과 중국 사상을 모두 연구해 ‘동서(東西)를 아우르는 석학’으로 유명한 프랑수아 쥘리앵 파리7대학 교수(71)가 동아일보 신년 인터뷰에서 내놓은 진단이다. 그는 “중국이 코로나19를 계기로 국민을 더 쉽게 통제하고 시민 자유 또한 제한하는 기반을 구축했을 뿐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자국의 방역 성과를 자랑하며 일종의 제국주의를 확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중국의 빈부격차 또한 갈수록 심해지고 당국이 사람들의 생각까지 통제하면서 내부 문제도 폭발 직전에 이르는 등 위기가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에서 오랫동안 공부해 동아시아 상황에 능통한 쥘리앵 교수는 한중일 3국을 비교하며 “경제는 있지만 정치는 없는 일본, 권위주의 통제사회인 중국과 달리 한국은 민주주의를 스스로 이뤘고 비판정신이 살아 있다”며 한국의 잠재력이 높다고 평가했다. 다만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부동산 가격 급등에 따른 한국의 양극화 또한 우려할 수준이라며 빠른 대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또 3월 대선에서는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나 극단주의가 아닌 공감의 리더십과 공동의 목표를 제시할 줄 아는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코로나19 같은 전염병 사태가 반복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각국이 어떤 점을 복기해야 할까.
“초동 대응에 실패했다. 특히 중국이 무책임했다. 2020년 1, 2월에는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확산이 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이 바이러스의 위험 및 확산 정도를 알고도 숨기려 했다고 본다. 이로 인해 전 세계가 초기 대응에 실패하면서 코로나19가 급속히 퍼졌다. 중국은 바이러스 기원 조사에도 협조하지 않고 감추고 있다. 게다가 중국은 코로나19로 이득을 봤다.
세계보건기구(WHO) 또한 상황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초기에는 큰 문제가 아니라는 식으로 대응하다가 전염병 대유행(팬데믹)을 선언할 시기를 놓쳤다. 늑장대응 비판이 쏟아지자 이후에는 지나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과학적으로 세밀히 따져보고 검증하며 대응해야 할 부분까지도 감정적으로 다뤘다. 이런 대응 부실이 전염병을 심각한 재앙으로 만들었다.”
―중국은 코로나19로 어떤 이득을 얻었나.
“강력한 봉쇄 조치를 통해 내적으로는 국민을 더 잘 통제하고 시민 자유를 손쉽게 제한하는 기반을 구축했다. 외적으로는 국제사회에 중국이 다른 국가보다 코로나19 사태를 빠르게 수습했다며 방역 성과를 자랑했다. 시진핑(習近平)식 국가주의 관점에서는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제대로 하지 못한 코로나19 방역을 중국이 손쉽게 해냈을뿐더러 중국의 통치체제가 우수하다는 점을 세계에 과시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도 날로 격화하고 있다.
“미국이 중국에 순진했다. 미국은 ‘자본주의적인 순진함’으로 인해 권위적이고 독재적인 중국 정부의 계획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또 중국이 경제는 물론이고 군사적으로도 이렇게 빨리 성장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20여 년 전 미국은 경제적으로 중국을 적극 지원하고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등을 독려했다. 중국이 시장경제 체제에 편입되면 미국 또한 이로 인한 경제적 이득을 누리고 국부를 추적하는 데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중국의 인권 탄압 문제가 불거졌지만 미국은 눈을 감았고 중국 역시 ‘일단 가난에서 벗어난 후 인권을 챙기겠다’며 미국에 맞춰주는 척했다. 경제적으로 성장한 지금 중국이 인권을 생각하고 있는가? 아니다. 중국이 주장하는 인권, 평등, 조화는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생각하는 개념과 다르다. 평등, 조화, 인권과는 다르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유럽 등 동맹과 연합해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미국에 전혀 휘둘리지 않고 있다. 한때 유럽이 세계 패권을 잡았고 이후 미국으로 이어졌듯 지금은 중국이 세계 패권을 잡기 위해 나아가고 있다. 또 중국은 ‘중국식 제국주의’를 확장하고 있다. 과거처럼 한 국가의 영토를 무력으로 침략하는 것만이 제국주의가 아니다. 중국은 아프리카에 거액을 투자하며 이 지역을 속속 잠식하고 있다. 몇 년 전 헝가리를 방문했을 때도 중국인이 동유럽 곳곳에 깊숙이 침투한 것을 보고 놀랐다. 중국은 서유럽 포르투갈에도 대대적 투자를 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전쟁을 해서 영토를 뺏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고 진화된 제국주의 행태다. (서방이) 중국을 컨트롤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중국의 미래는 장밋빛인가.
“분명 중국은 경제적으로 더 부강해지고 군사적으로도 더 강력해질 것이다. 어찌 보면 지금이 ‘중국 최고의 순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계속 위기가 커지고 있다. 갈수록 심해지는 빈부격차가 대표적이다. 또 중국에는 제대로 된 철학과 사상이 없다. 정부가 ‘생각’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유명 학자들 또한 중국을 떠났다. 이처럼 공포와 통제를 기반에 둔 사회는 한계가 명확하다. 어느 시점에서 중국 내부적으로 큰 문제가 폭발할 것이다.”
―부동산 등 한국의 양극화도 상당하다.
“최근 몇 년간의 부동산 급등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하지만 빈부격차가 더 심해지면 사회 체제 자체가 붕괴된다. 그래서 정부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 특정 계층이나 분야가 부를 독점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특히 생산 및 실물 경제 분야를 통해서도 부의 축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책을 보완해야 한다.”
―3월 대선을 앞둔 한국에서 포퓰리즘 공약이 남발된다는 우려가 있다.
“세계 곳곳에서 포퓰리즘과 극단주의가 득세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가 지도자의 리더십에서 일자리 확대 같은 경제 성과가 차지하는 부분도 물론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국민 공감을 얻을 수 있으면서 일관성이 있는 목표를 만들어야 한다. 사회 구성원이 공감하는 공동의 목표와 과업이 있어야 그 사회가 발전한다.”
―한국의 미래를 어떻게 보나.
“한국은 과거 역사에서 중국과 일본 때문에 힘든 상황에 처한 적이 있었다. 남북 분단을 포함해 여러 위기도 겪었다. 그러나 한국은 자유선거와 민주주의를 스스로 이뤄냈고 경제적으로도 이미 많은 발전을 이뤘다. 일본은 경제는 있지만 정치는 없는 사회라고 본다. 중국은 권위주의 사회다. 반면 한국은 사회 내 비판정신이 살아 있다. 이를 토대로 문화적 독창성까지 발휘한 결과, 세계가 한류에 환호하고 있다고 본다.”
―한국 사회의 개선점은….
“구성원 개개인에 대한 압박이 너무 강하다. 한국인은 일을 지나치게 치열하게 하고, 많이 한다. 집단주의적인 압박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이런 압박감이 한국인의 잠재력과 창의력을 말살시킬 수 있다. 한국인의 치열함은 분명 강점이지만 적절히 조절할 수 있는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코로나19 사태가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있다. 백신 불평등 및 백신 거부에 대한 논란도 상당하다.
“코로나19 해결을 위한 해답은 ‘휴머니티’, 즉 인간다움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백신 불평등이나 백신 거부 사안 등도 이를 통해 해결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백신 양극화 상황에서 보듯 코로나19는 개개인의 건강 문제를 넘어 각국의 부, 국가 대 국가의 관계 문제가 됐다. 백신 접종률은 철저히 한 국가의 경제력과 연결된다. 코로나19가 국가별 부의 양극화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안타깝다.
백신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자유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들이 접종 의무화를 자유 억압이나 민주주의 후퇴로 연관짓지는 않으면 좋겠다. 나의 자유는 타인의 자유가 시작되는 곳에서 멈춘다. 내가 백신을 맞지 않으면 내 주변이 위험할 수 있고 감염자가 늘면 봉쇄 조치가 강화돼 사회 전체가 피해를 본다. 이런 점을 최근에 깨달은 젊은 세대도 많다. 코로나19가 세대 통합의 기회일 수 있는 만큼 이를 잘 활용했으면 좋겠다.”
프랑수아 쥘리앵 교수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철학자인 프랑수아 쥘리앵 파리7대학 교수는 1951년 남동부 앙브룅에서 태어나 그랑제콜 파리고등사범학교(ENS)에서 그리스 철학을 전공했다. 1975년 중국으로 가 베이징대와 상하이대 등에서 중국 철학 및 사상을 연구했고 파리7대학에서 극동아시아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파리7대학 현대사상연구소장, 중국학연구회장, 국제철학회장 등을 지냈다. 40여 년간 유럽 철학과 중국 사상을 함께 연구해 ‘동서(東西)를 아우르는 석학’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탈합치’ ‘사물의 성향’ ‘운행과 창조’ ‘전략’ ‘맹자와 계몽철학자의 대화’ 등 동서양 철학과 사상, 문화 등을 주제로 40여 권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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