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만 공습이 벌어진 직후인 1941년 12월 10일, 필리핀 클라크 공군기지에서 출격한 B-17 한 대가 일본 해군 함대를 습격했다. 일본군 ‘격추왕’ 사카이 사부로의 증언에 의하면 하늘에서 함대를 호위하고 있는데, 갑자기 3개의 파문이 생기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태평양 전선에서 일본 함대에 대한 미군 최초의 공습이었다. 이 폭격기의 조종사는 미 육군 콜린 켈리 대위였다. 제로센 편대가 함대를 호위하고 있었지만, 그는 대담하게 제로센보다 높은 고도에서 접근해 탐지를 피했다. 사카이는 눈을 의심했다. 전투기의 호위도 없이 단독으로 뛰어드는 폭격기란 듣도 보도 못했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콜린의 폭격기와 제로센 편대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벌어졌다. 사카이는 이 폭격기를 자신이 격추했다고 했지만, 사카이의 증언을 불신하는 입장도 있다. 그러나 이날 공중전의 양상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10대의 제로센과 1대의 폭격기 간에 숨 막히는 공중전이 전개됐다. 양측 모두 실전은 처음이어서 기동, 전술, 사격 실력까지 다 형편없었다고 한다. 이때의 B-17에는 후방 총좌가 없었는데, 이것이 치명적이었다. 켈리 대위는 기체를 비틀고 방어기동을 해서 전투기의 공격을 피하면서 기관총으로 제로센을 공격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후방 기관총이 없어 결국 후미를 물리고 말았다.
켈리의 기체는 기지에 거의 도착해서 타격을 입었다. 켈리는 필사적으로 기체를 수평으로 유지하며 대원들이 낙하산으로 탈출할 수 있게 했다. 마지막으로 부조종사가 탈출할 때 기체가 폭발하고, 켈리는 전사했다.
켈리는 미국의 영웅이 되었다. 전과로 따지면 무의미하고 무모한 공격이었다. 그러나 전쟁에서는 숫자로 계산할 수 없는 요인이 있다. 자기희생을 통해 모든 이에게 감동과 군인의 의무를 위한 용기와 감투정신을 불어넣는 행동이다. 그것 없이 이길 수 있는 전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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